“배움은 콩나물시루와 같다”
“배움은 콩나물시루와 같다”
  • 김장환 프리랜서
  • 승인 2015.03.23 10:18
  • 호수 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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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주면 빠져나가지만 알게모르게 자란다
뒤늦은 한글공부 박분순 할머니

즐거운 내 인생
                 글쓴이 박분순
평생 못 배운 설움
어머니학교에서 소원 이루었네
좋은 선생님 만나
유식한 할머니 되었네
재미있는 한글을 배우니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이런 즐거운 내 인생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

▲ 박분순 할머니와 차은정 교사
올해 일흔일곱의 박분순 할머니가 어릴 적 배우지 못한 설움을 이겨내고 마서어머니학교를 다니면서 한글을 배운 후 자신의 마음을 담아 쓴 한편에 고운 시다.
남들은 “늦은 나이에 글을 배워서 어디다 쓸거냐?”며 사서 고생하는 박분순 할머니를 안쓰럽게 여기기도 하지만 만학에 즐거움에 푹 빠진 박씨 할머니에겐 가당치도 않는 말이다.
일제강점기, 소학교 1년을 다니다 학업을 그만둬야 했던 박씨 할머니. 시집온 지 3달만에 군에 입대한 남편이 자신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한글을 알지 못해 편지만 잡고 하염없이 울었던 아픈 기억이 가슴 한편에 지금껏 남아 있다고 한다.
박씨 할머니는 “좋은 선생님이 열심히 지도해주다 보니 한글을 깨우치고 이제는 편지를 쓸 수 있게 됐다”며 “어머니학교에 가는 날이면 기분이 좋고 배우는 시간은 집 걱정에 아픈 곳도 사라질 만큼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부터 ‘서천군농민회 마서어머니학교’에 처음 발을 딛게 된 박씨 할머니는 지난 7년 동안 마서면 신포 2리에 자리 잡은 마서노인건강센터를 찾아 열심히 노력한 결과 지난 2011년 서천군문예백일장 글짓기부문 최우수상을 비롯해 지난 2013년 한국문예교육협회 늘배움상, 서천군문예교사협회 예쁜 글씨쓰기부문 장려상을 받기도 했다.
박씨 할머니에게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는 데 어렵지 않냐?” 질문하자 시골의 순박한 할머니 같은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박씨 할머니는 “배움은 콩나물시루와 같다”며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물이 다 빠져 나가지만 알게 모르게 조금씩 자라나는 것이 콩나물이듯 세상의 배움이 이런 이치와 같지 않겠냐?”고 말했다.
▲ 마서어머니학교에서 한글공부중인 할머니들
박씨 할머니처럼 만학의 즐거움에 푹 빠져 노년의 행복을 가꾸는 마서면 신포마을 할머니들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수요일이면 마서노인건강센터에서 운영하는 마서어머니학교로 발길을 옮긴다.
배움에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걸어서 30분이 더 되는 신기리를 비롯해 도삼리, 산내리 등에서도 찾는다고 하니 만학에 행복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현재 15여명의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고 있는 이곳에서는 김명희 교사와 차은정 교사가 할머니들의 교육을 지도하고 있다.
할머니들의 수준에 맞춰 단계별로 지도하는데 이제는 학교 운영이 8년째여서 모두들 2단계와 3단계에서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할머니들의 뜨거운 학구열과 김명희, 차은정 교사의 노력으로 마서면 할머니들은 지난해 ‘글로 찾은 내 인생’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전문 작가들처럼 거창한 책은 아니지만 할머니들의 행복한 마음을 담은 책이기에 세상의 어떠한 책보다 소중한 보물로 여기고 있다.
마서어머니학교는 이들 할머니들에게 배움의 행복을 나누기 위해 올해도 문집 발간을 목표로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글쓰기를 비롯해 문화·예술공연과 영화관람, 그림책 읽어드리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한글을 더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수준에 맞는 교재도 계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차은정 교사는 “배움의 기회가 적은 할머니들을 지도하고 반대로 삶의 지혜를 배우며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며 “여건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할머니들을 위한 한글지도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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