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 하굿둑, 수산업 피해현장을 가다 (4)텅 빈 바다
■기획취재 / 하굿둑, 수산업 피해현장을 가다 (4)텅 빈 바다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5.09.29 13:25
  • 호수 7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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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장 사라지고 관광지로 탈바꿈하는 고군산군도
쌓여가는 진펄…멸절 위기 맞은 유부도 백합
인구 2000 어청도, 새만금 이후 급격히 쇠락

■※이 기획취재는 충남도 미디어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뉴스서천> 기획취재팀이 지난 달 위도를 방문한 데 이어 유부도와 신시도, 어청도를 방문하여 수산업 현황을 살펴보았다. 서해 황금어장의 중심지였던 이 섬들은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본다.

◇신시도

▲ 폐사한 조개가 떠밀려와 쌓인 신시도 남쪽 해안
군산시 옥도면에 속하는 신시도는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큰 섬이며 지금은 야미도와 함께 새만금 방조제로 연결돼 배를 타지 않고 갈 수 있다. 뉴스서천 취재팀이 지난 달 23일 신시도를 방문했다.
야미도를 지나 3호 방조제를 지나면 바로 신시도에 닿는다. 신시도 북쪽 해안으로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이 도로는 신시도에서 무녀도-선유도-장자도까지 이어진다. 고군산군도의 주요 섬들이 다리로 육지에 연결되는 것이다. 내년 말까지 완공 예정으로 아직 비포장이지만 신시도 주민들에 한해 자동차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 초기로 섬 주변에 많은 청어를 잡기 위해 김씨 일가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전한다.
신시도 주민들은 남쪽 평지 지풍금[깊은 금] 마을에 주로 살고 있다. 100여호에 이르렀는데 새만금간척사업이 시작되며 어업보상을 받고 섬을 떠나 지금은 70호 가량 된다. 가구 수가 크게 줄지 않은 것은 개발 기대효과 때문으로 보인다. 신시도는 지난 10일 행정자치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가을여행 하기 좋은 섬 콘테스트에서 베스트9에 최종 선정되기도 했다.신시도는 다른 섬들과 달리 농경지가 있어서 논농사도 짓고 고구마·채소·고추·콩·마늘 등은 자급자족할 정도이다. 연근해에서는 새우·멸치·갈치·고등어 등이 잡혔으며, 대규모의 김 양식이 이루어져 풍요롭게 살던 섬이었다.

신시도를 비롯해 고군산군도 여러 섬에서는 낭장망을 이용해 멸치와 까나리를 잡았었다. 이는 빠른 조류를 이용하는 오래된 어법이다. 그러나 새만금 방조제가 뻗어나가며 바다 환경이 달라지기 시작해 어획량이 줄기 시작했으며 2006년 방조제가 완공돼 물길이 완전히 막힌 후에는 토사가 쌓이기 시작했다. 방조제 공사 도중 한때 바지락이 엄청나게 서식했지만 3년 후에는 일시에 사라졌다고 한다. 방조제 공사 이전에는 김 양식도 잘 돼 높은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신시도 남쪽 2공구가 시작되는 부분에 배수갑문인 신시갑문이 설치되며 현재 해수 유통으로 간간히 조류가 드나들고 있지만 신시도 주변의 조류가 약해지고 뻘이 쌓이며 조개들이 집단 폐사했다. 폐사한 조개들은 신시도 남쪽 해안으로 떠밀려와 바닷가에 긴 띠를 이루며 수북히 쌓여 있다.

금강, 만경강, 동진강 물이 만나는 곳에 자리잡은 천혜의 어장 고군산군도의 바다는 이제 텅 비어 있다. 고기가 잡히지 않아 야미도 등지에서는 일찍 낚싯배로 전환했지만 낚시도 잘 안돼 이곳을 찾는 낚시꾼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주민들은 연륙교 개통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평당 몇 만원하던 땅값이 폭등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토지는 외지인들에게 넘어갔다.

◇유부도

▲ 유부도 갯벌. 진펄이 쌓여 경운기 출입이 어렵게 되자 군에서 갯벌을 메워 길을 만들었다.
지난 8일 문예의전당에서 열린 ‘유부도 보전 방안에 관한 토론회’에서 충남연구원의 정옥식 박사는 “2013년 한국 내 이동조류 서식 현황을 조사한 결과 유부도-장항 해안-금강하구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가 조사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철새들의 갯벌에서 먹이를 찾을 수 있고 만조시 물러나 쉴 안전한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부도 갯벌은 점점 진펄이 쌓이며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 지난 달 16일 뉴스서천 취재팀이 유부도를 찾았다.

과거 유부도에서는 백합, 바지락 등 조개가 지천이었다. 그러나 새만금 방조제가 막힌 후 토사가 쌓이기 시작하며 백합이 점점 나오지 않다가 2009년 이후에는 진펄에 막혀 경운기가 다닐 수 없게 되자 유부도 주민들의 주수입원인 백합잡이는 중단됐다.

3년 전 서천군에서 경운기가 다닐 수 있도록 자갈을 깔아 길을 내준 후 백합잡이는 재개됐다. 그러나 잡히는 양은 점점 줄고 있다. 뉴스서천 취재팀이 유부도를 찾았을 때 썰물 때가 되어도 백합잡이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었다. 한 주민은 “올해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백합이 통 안나온다”고 말했다.
한 때 주민들은 북측 도류제 끝 부분까지 나아가 우럭낚시를 해서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낚시를 하는 사람이 없다.

유부도 반장 조현산씨는 “주민들 생계 대책이 막연하다”며 유부도 갯벌의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등재에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되면 관광객들이 와서 민박이라도 할 수 있다며 기대를 걸고 있다.
장항에서 만난 어민들은 “비응도에 남방파제가 생기며 유부도를 비롯해 서천 연안에 진펄이 쌓이는 속도가 가속화 됐다”고 말하고 있다. 길이 850m의 남방파제는 2008년도에 완공됐는데 밀물 때 조류가 서천 연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어청도

▲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어청도 등대
군산시 옥도면에 속하는 어청도는 마량항에서 46km 서쪽 바다에 있는 섬이다. 군산연안여객터미널에서 여객선이 다닌다. 연도를 경유하여 어청도까지 가는 데 3시간이 소요된다. 뉴스서천 취재팀이 새만금방조제에서 50km 이상 떨어진 어청도의 어업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달 30일 어청도를 찾았다.

어청도는 군산시에 속해 있으나 군산의 섬들보다는 충남 보령의 외연도, 호도, 녹도 등과 가깝고 가장 가까운 육지는 서면 마량리이지만 군산에서 배가 오가기 때문에 이들 지역과는 교류가 거의 없다.
천연의 만을 이용한 어청도 항에 들어서자 넓은 항만 내에 배는 고작 10여척에 불과했다. 이들도 대부분 낚싯배였다. 어청도는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

어청도에서 민박을 하는 이병천씨(75)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한번도 어청도를 떠나지 않은 토박이 어부였다.
그에 따르면 한창 때 어청도에 2000명 이상이 살았다 한다. “지금은 200명도 안돼.” 어청도 초등학교가 있는데 2학년 2명, 4학년 2명, 5학년 1명, 6학년 1명 총 6명이다.

어청도에는 구한말 때부터 일본인들이 살았다 한다. 일본제국주의는 어청도, 거문도 등의 외딴 섬부터 조선을 잠식해 들어왔는데 1907년, 어청도에만 40여 호 200여명의 일본인들이 정착해 살았다 한다. 또한 일제 때 어청도는 오사까에서 요동반도의 다롄까지 왕래하는 정기여객선과 오사까, 신의주간 우편선의 기항지이기도 했다. 1912년에 생긴 어청도 등대는 서해를 항해하는 배들의 길잡이였다. 당시 지은 등대를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 텅 빈 어청도항
일제 때부터 어청도 근해에서 고래를 잡았다 한다. 동해의 고래가 봄이면 새끼를 낳기 위해 어청도 근해로 몰려 왔다는 것이다. 국제 고래위원회(IWC)의 결의로 상업 포경이 끝난 것은 1986년이었다.
고래잡이가 끝났지만 포구는 각종 어선들로 늘 붐볐다. 선창에는 다방과 식당이 줄을 이었다. 말이 다방이지 실제로는 술도 파는 유곽이었다 한다. 아가씨들이 많을 때는 100여명이 넘었다 한다. 큰 바람이라도 불면 인근에서 조업하던 배들이 포구로 들어와 항구 안을 꽉 채웠다.

이처럼 호황을 누리던 어청도가 쇠락을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새만금방조제가 막히고 난 직후부터였다. 식당과 슈퍼 몇 개만 남고 선창가 상가들은 대부분 폐업했다. 노래방도 없어졌다. 몇몇 상가는 민박집으로 전환했다. 금어기가 끝났는데도 어청도 부근에서는 조업을 하는 어선들을 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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