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천의 마을 이야기/(6)문산면 은곡리
■ 서천의 마을 이야기/(6)문산면 은곡리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6.02.29 11:08
  • 호수 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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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km 길산천 발원지…부여 홍산 잇는 길목
고인돌 2기, ‘대명바위’로 불리며 살아남아

▲은곡리 위성사진

▲ 웃한실에 있는 길산천 발원지.

부여군 미산면 접경에 있는 문산면 은곡리는 길산천의 발원지이다. 발원지에서 은곡저수지와 봉선지를 거쳐 금강호에 이르는 길산천은 23km에 이른다.

은곡리(恩谷里)는 서천군 두산면에 속해 있었으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시 대곡리(大 谷里)와 은적리(恩寂里)를 통합해 은곡리라 했다. 대곡리는 이름 그대로 큰 골짜기이다. 3km에 달하는 긴 골짜기가 동서로 나 있는데 골짜기를 따라 남향받이에 자연마을이 형성되었다.

▲한실마을 모습
이 마을을 지금도 ‘한실’이라 부르고 있으며 은곡리의 으뜸 마을이다. 골짜기 위쪽 마을이 ‘웃한실’, 아래쪽은 ‘아래한실’이다. 한실마을 서쪽은 옛날에 감나무가 많아 ‘감나무골’이다.
611번 지방도로를 따라 다리를 건너면 왼편에 양지편 마을이 있고 양지편 위쪽은 ‘웃말’ 양지편 서쪽을 ‘원퉁이’라 부른다. 모퉁이를 돌아 북쪽에 웃말이 있다. 이 모퉁이를 ‘검바모퉁이’라 하는데 검은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지편 동쪽 골짜기를 ‘은적골(굴)’이라 부르는데 이 골짜기에 은적사가 있었다. 이곳에 있는 마을이 ‘망굴’마을이며 마을 앞 들판을 ‘망굴들’이라 부른다. 은적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텃골’이라 하고, 망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를 ‘분톳골’이라 하는데 분토(粉土)가 많이 났다고 한다.

다리 아래에 있는 마을을 ‘박상골(朴上谷)’이라 하는데 박씨가 이룬 마을이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박상골 동쪽에 있는 산을 ‘태뫼봉’이라 부른다.

▲논가운데에 있는 고인돌
지금의 은곡리는 서천군에서 오지마을로 알려져 있지만 이처럼 다양한 지명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먼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이를 말해주듯 다리 아래 50여미터 떨어진 곳에 고인돌 기기가 남아있다. 1기는 논 한가운데에 있고 나머지 1기는 아을 진입로 길 가에 있다. 이를 ‘대명(大鳴)바위’라 부르는데 농사짓기에 불편해 바위를 개려고 정을 대자 크게 울어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돌을 시령스럽게 새각하며 보호하고 있다.

한실 전 이장 구병모씨에 따르면 전북 완주군 대명리라는 곳에서 와서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온다는 것이다. 대명리는 논산시 상월면에 있다. 인근에 바위가 없는데 이런 바위들이 있어 이를 기이하게 여긴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로 보인다.

▲1748년에 건립된 대명교 중수비
고인들은 은곡저수지 부근에 3기가 더 있었는데 모두 파괴되었다. 지원리에 2기가 더 있어 이들을 ‘칠성암’이라 불렀다 한다. 지원리에 있는 폐교 ‘성암초등학교’는 여기에서 나온 이름이다.

고인돌 옆에는 ‘대명교 중수비, 건륭13년 정월’라고 쓰인 비가 서있다. 건률13년은 1748년이다. 오랜 세월에 마모가 심해 겨우 판독할 수 있다. 이 다리가 부여 홍산에서 고개를 넘어 서천군으로 진입할 때 매우 중요한 다리였음을 짐작케 한다. 은적 북쪽에서 부여 옥산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꽃감재’라 한다.
웃한실에서 구동리로 난 고갯길이 2003년도에 확포장되어 구동리와의 소통이 원활해졌으며 구동리에서는 문산면 금복리로 이어지는 고갯길이 있다.

1970년대 인구가 가장 많았을 때 130여호 가량 되었다 한다. 5인가족으로만 봐도 700여명이 살던 곳이었다. 마을회관을 지을 때 100여명이 울력을 나와 두 패로 나누어 교대로 공사를 했다고 한실마을 이원희씨가 말했다. 지금은 50여호 남짓 대부분 70~80대 고령층이다. 은곡리는 평해구씨 집성촌이다. 마을 주민 80% 이상이 구씨로 서천의 어느 집성촌보다 밀집도가 높다. 서천군농업기술센터는 이 마을을 ‘건강장수마을’로 지정해 복지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은곡리는 부여 홍산과 가까워 홍산장을 많이 이용했으며 학교도 홍산농업고들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많다. 이 마을의 주된 생업 수단은 벼농사이다. 가을에 황금빛 벼가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주로 관정을 뚫어 물을 대고 있다.(이야기 구술: 이원희·구설환·구병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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