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들길, 신작로 그리고 철길과 역/신웅순 칼럼위원
■모시장터/들길, 신작로 그리고 철길과 역/신웅순 칼럼위원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17.09.21 09:07
  • 호수 8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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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작로는 새로 만든 길을 말한다. 나에겐 신작로라고 하면 차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가는 엣날 도로를 연상하게 된다. 도로 변엔 으례이 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서 있었다. 5, 60년대는 그런 포장되지 않은 새로 생긴 도로를 신작로라 불렀다.

  중학교 가는 길은 멀었다. 들길을 지나 신작로를 걸어가야한다. 아침, 저녁으로 한 시간 반씩 3시간을 걸었다. 멀리만 바라보고 걸었던 그리운 들녘과 신작로이다. 단어장을 외우면서 걸었던 길이었고, 비를 맞으면서 전신주를 세며 걸었던 평생 잊을 수 없는 길이었다. 돌아서던 생각들과 가슴 아픈 사색들로 언제나 신작로와 플라타너스를 멀리도 보냈었다. 이젠 그 생각과 사색들이 나이든 초겨울 길을 또 그 때처럼 멀리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길은 걸어야하고 언제나 걸어야할 길은 멀리 있었다.

      신작로와
      플라타너스를
      멀리도
      보냈던

      돌아서던
      생각들과 
      가슴 아픈
      사색들이

      저녁놀 초겨울 길도
      또 멀리 보내고 있다  
                 -「 아내 21」

  그 신작로 끝에 읍내의 철길과 역이 있었다. 들길 어디쯤 가면 해는 중천에 떠있었고 신작로 어디쯤가면 열차는 기적 소리 울리며 먼 산모롱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해와 열차는 시간을 알려주어 우리를 학교에 지각하지 않게 해주었다. 

  중학교 때였으니 반세기도 훨씬 넘었다. 그 신작로는 곱게 포장되었고 역사는 현대식 건물로 다른 데로 옮겨졌다. 거기에서 걸었고 거기에서 서성거렸던 낙관없는 발자국들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추억이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왔는가.
  참으로 먼 길을 많이도 걸어왔다. 나 혼자 걸어왔던 길과 아내와 함께 걸어왔던 길들이었다. 봄비와 걸어왔던 길들이었고 가을비와 서성였던 길들이었다. 어디쯤부터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또 어디쯤 와선 승용차를 타고 다녔던 길들이었다. 
    
      봄비는 철길을 한없이 걸었었고
      가을비는 간이역에서 종일을 서성거렸다   

      한 평생 지워지지 않는
      낙관 없는 발자국들
              - 「아내 9」

  길은 누군가를 불러야 하고 누군가에게 대답해야한다. 세상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길이요 메아리만 남은 산녘인지 모른다. 애초에 아픔이었고 애초에 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산은 넘어야 하고 강을 건너야한다.
  언제나 후렴들을 되풀이하며 살아왔던 우리들이 아닌가.

  8월 말로 교직의 긴 여정을 마쳤다. 두 딸들도 다 여의었으니 이제 아내와 둘이 걸어가는  길만 남았다. 아내와 손을 잡고 정답게 플라타너스 길을 걸어가야겠다. 
아내는 일생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이요, 내가 기다려야 할 역이다. 오늘도 손을 잡고 성당에 갔다. 아내의 손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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