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영의 고전산책 /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송우영의 고전산책 /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8.04.18 17:36
  • 호수 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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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시민기자
송우영 시민기자

고전古典을 읽는 것은 나를 돌아보는 작업이다. 곧 고전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나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말로 견강부회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고전의 꽃은 경이다. 인류 최고의 책으로는 일성삼경一聖三經이 있는데 일성은 기독교회의 경전인 성경책이고 삼경은 시경, 서경, 역경이다. 성경은 구원에 관한 기록물이고 삼경은 인간사에 관한 기록물이다.

인류사회에서 구원론을 제외한 삼경만큼 위대한 책은 없다. 시경의 예만 들어봐도 일찍이 공자는 마당을 잰걸음으로 달려가는 아들을 불러놓고 말하는 장면이 논어 계씨편에 기록됐는데 진항이 공자 아들 백어에게 묻기를<진항문어백어왈陳亢問於伯魚曰> 너는 아버지로부터 남달리 들은 것이 있느냐<자역유이문호子亦有異聞乎>하니, 백어 답<대왈對曰>, “없다<미야未也>”

일찍이 홀로 서 계실 적에<상독립嘗獨立> 내가 마당을 달려가는데<리추이과정鯉趨而過庭> “시를 배웠느냐<왈학시호曰學詩乎>” 하시기에 아직 못배웠습니다<대왈미야對曰未也>”라고 아뢰니,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할 게 없느니라<불학시무이언不學詩無以言>” 하셔서 나는 물러나 시를 공부했다<리퇴이학시鯉退而學詩>. 다른 날<타일他日> 또 홀로 서 계실 적에<우독립又獨立> 내가 마당을 지나가니<리추이과정鯉趨而過庭> “예를 배웠느냐<왈학예호曰學禮乎>” 하시기에 아직 못배웠습니다<대왈미야對曰未也>”하고 아뢰니 예를 배우지 않으면 사람들 앞에 설 수 없느니라<불학예무이립不學禮無以立>” 하셔서 물러나와 예를 배웠다<리퇴이학례鯉退而學禮>. “들은 것은 이 두 가지뿐이다<문사이자聞斯二者>”라고 말하니 이에 진항은 물러나 기뻐하며 왈<진항퇴이희왈陳亢退而喜曰> “하나를 물어 셋을 얻었다.<문일득삼問一得三>” 시와 예에 대해 들었고<문시문례聞詩聞禮> 또 군자는 자기 아들이라 하여 특별히 가까이하지 않음을 알았다.<우문군자지원기자야又聞君子之遠其子也>論語季氏>

공자가 말한 시의 원문은 시경에 나오는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의 시로 사람이 주남과 소남의 시를 읽지 않으면 면상<얼굴> 앞에 담장이 막혀 있는 격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라는 말이다. 원문은 기유정장면이립여其猶正牆面而立與로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 면면장免面牆인데 시를 알아야 담장 같은 장애물이 제거된다는 말로, 향리행정책임자를 면장面長이라 하는데 면장面牆과 발음이 같아서 요즘에는 면장도 알아야 해먹는다는 다소 비하된 듯한 말로 왜곡되어 속담으로 전해진다.

여기에서 과정지훈過庭之訓이라는 고사가 유래됐고 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음을 나타내는 원기자遠其子라는 어휘도 되새겨 봐야 한다. 그야말로 엄부자모嚴父慈母. 자식 교육에 있어서는 공자라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려말 문하시중을 지낸 추적은 명심보감을 펴내면서 부안설扶安說로 훈자편訓子篇을 달아 왈, “지락至樂은 막여독서莫如讀書이며, 지요至要는 막여교자莫如敎子니라.” 라고 했다. 지극히 즐거운 것은 책 읽는 것 만한 것이 없고 지극히 중요한 것은 자녀 교육 만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송나라의 성리학자인 여형공 왈<여형공왈呂滎公曰> “안으로 현명한 부모가 없고<내무현부모內無賢父母> 밖으로 엄한 스승과 벗이 없으면서<외무엄사우外無嚴師友> 능히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이능유성자而能有成者> 없다<선의鮮矣>. 여기서 선은 육상산陸象山은 드물다는 말보다는 무, 없다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장자는 자신의 책 장자莊子 외편 병무篇 騈拇에서 허를 찌르는 절묘한 답을 내 놓는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해서 자르지 말라는것이다.<부경수단鳧脛雖短 속지즉우續之則憂 학경수장鶴脛雖長 단지즉비斷之則悲> 세모나면 세모난 대로 둥글면 둥근 대로 희면 흰 대로 푸르면 푸른 대로, 무지개가 한 색깔만 아니듯이 날 때부터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품을 상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게 키워내야 한다는 말이다. 맹자는 이를 상용傷勇<상처받은 용기>’이라했다. 잊지 마라 제아무리 잘나도 자식 잘못키우면 그 부모는 죽는날까지 인간 말종이 아닌다음에야 고개 못들고 다닌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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