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영의 고전산책
■송우영의 고전산책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8.05.24 09:10
  • 호수 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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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양능을 이룬 효자 한경 충담공 이제두 선비
송우영 시민기자
송우영 시민기자

많은 청춘들은 자신이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첫발 내딛는 순간 CEO같은 그럴싸한 폼 나는 인생이 될 걸로 기대하지만 세상은 다수의 저들에게 CEO 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도 공부하는 자녀들은 공부하는 매 순간마다 지금 하는 공부가 장차 내 인생에 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증명서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여자의 분노는 물에 새기고<女憤之刻水> 남자의 분노는 가슴에<男憤之刻心. 十三經注疏 註>새기라는 이언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똑같은 분노지만 해결하는 방법이 다름은 남녀의 유별함 때문이다. 백시랑의 아들이 공부를 게을리하자 보다 못한 아버지가 아들을 타이른다.<백시랑白侍郞 면자문勉子文 >

논밭이 있는데도 농사짓지 않으면<유전불경有田不耕> 창고가 비게 되고<창름허倉凜虛>, 책이 있는데도 가르치지 않으면<유서불교有書不敎> 자손이 어리석게 된다.<자손우子孫愚> 창고가 비면<창름허혜倉凜虛兮> 한 해 먹고 살기가 부족하고<세월핍歲月乏> 자손이 어리석으면<자손우혜子孫遇兮> 예의가 없게 되나니<예의소禮義疎> 만약 농사짓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다면<약유불경여불교若惟不耕與不敎> 이는 아버지의 허물이 아니겠는가.<시내부형지과여是乃父兄之過歟. 明心寶鑑 學問篇>”

우리에게 강태공으로 알려진 태공망 여상은 여기서 한술 더 떠서 콕 집어서 말한다.

아들을 제때에 가르치지 않으면<남자실교男子失敎> 자라서 반드시 난폭하고 어리석게 되며<장필완우長必頑愚>, 딸을 제때에 가르치지 않으면<여자실교女子失敎> 자라서 반드시 거칠고 무례하게 된다.<장필추소長必麤疎 明心寶鑑 訓子篇>”

자녀를 제대로 교육하는 공부에는 세 개의 순서가 있다. 몸 공부, 마음 공부, 그리고 끝으로 글공부이다. 이 순서가 뒤집히거나 건너뛰게 되면 불이 달리고 악마가 입 안에 들어온다는 주화입마走火入魔가 되어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건 많고 학벌은 높으나 돼먹지 못한 인간 말 종이 되어 인간사에 이보다 더한 애물단지는 없으리라.

이런 사람이 교회에 있다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이며 이런 사람이 마을에 있다면 그 마을 인심은 사나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았으나 죽은 마을이 된다. 그렇다면 몸 공부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인가. 효에서 시작된다. 허신의 설문해자에 의하면 효의 시작은 땅을 파는 데서 부터인데, 자에는 흙토에 삽이나 괭이를 의미하는 삐칠 별丿이 있고 그 아래 아들자가 토와 별丿을 이고 있는 형국이다.

란 자녀가 부모를 모심이 효인데 효라는 글자는 어째서 자녀가 땅을 이고 있는가. 경가고월지선耕稼苦越至善이라하여 사람이 땅을 파는 고통을 넘어서면 선에 이른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땅을 파면 인간은 선해진다는 말이다. 흙을 모르고 자란 도시의 메마른 청춘들. 흙을 모른 채 지식만 꽉 차서 목소리만 큰 빈 깡통 같은 사람들. 흙과 자연 섭리의 이치를 가르치지 못하는 어른들. 이 모두가 효를 입으로만 알고 몸으로는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지혜도 없고 본받을 점도 없는 부끄러운 인생들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딸랑 두 형제가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대부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 있다. 맹의자와 그의 동생 남국경숙이다. 맹의자는 가문도 일으켰고 벼슬도 대부에 이르렀고 이쯤 되면 성공한 인생 아닌가라는 자랑도 할 겸 공자를 초청해서 큰 연회를 연다. 당시 공자에게 인정받는 일은 천하에 인정받는 일이기도 했다.

잔치가 무르익을 무렵 맹의자가 모두가 들릴만한 목소리로 의기양양하게 묻는다. “효가 뭡니까?<맹의자문효孟懿子問孝>” 공자는 맹의자를 빤히 보더니 극도로 간단하게 답한다. “어김이 없는 것이지요.<자왈子曰무위無違. 論語爲政2-5文章>” 순간 좌중은 뻘쭘했고 싸늘했다. 맹의자는 기대하기를 당신이야말로 천하에 둘도 없는 효자다. 가문도 일으켰고 벼슬도 대부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이 정도는 아니어도 그래도 조금은 추켜세워 줄줄 알았는데 뜻밖의 답변 어김이 없는 것이지요.”라고 했으니 분위기는 싸할 수밖에...

이 말속에는 공자의 뼈아픈 과거가 숨겨져있다. 공자는 20세 이전에 이미 학문적으로 꽤 공부가 깊어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다.<入太廟, 每事問. 論語 八佾3-15文章> 맹의자 아버지는 죽으면서 어린 두 아들에게 유언을 한다. 내가 죽으면 공자에게 가서 공부하거라. 그러나 무슨 연유에선지 두 아들은 끝내 공자에게 와서 공부하지 않았다. 당시 공자는 극도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중이었다<執鞭之士. 論語述而7-11. 공자빈차천孔子貧且賤-孔子世家. 오소야천吾少也賤 고다능비사故多能鄙事. 論語子罕9-6>

맹의자 아버지가 남겨준 재산 정도면 공자는 충분히 맹의자 후견인으로서 또 스승으로서 맹의자와 그의 동생을 더 훌륭히 길러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되지 아니했고 공자는 먹고 살기 위해서 말똥치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오늘 공자는 맹의자의 물음에 무위<부모 말씀에 어김이 없는 것>라고 답한 것이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꽤 옹졸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본래 경전이란 그 시대의 안목으로 읽어야 하는 법. 맹자는 효를 일러 맹자孟子 진심장구상盡心章句上에서 양지양능良知良能이라 했다. 양지양능이란 부모가 말하지 않아도 부모의 몸과 마음을 읽어 섬기는 것이다. 조선시대 효한 선비는 하늘의 별처럼 많으나 양지양능을 이룬 선비는 효를 하기 위해 가평군수로 내려간 한경漢卿 충담공忠潭公 이제두李齊杜 선비가 유일이다. 그의 9대 후손이 현재 시초 후암교회 이황수 장로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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