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영의 고전산책 / 불학작핍부不學作乏夫이거나 상대작필부上對酌匹夫이거나
■송우영의 고전산책 / 불학작핍부不學作乏夫이거나 상대작필부上對酌匹夫이거나
  • 송우영 시민기자
  • 승인 2018.08.14 15:34
  • 호수 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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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시민기자
송우영 시민기자

연암이 연경 주점에 들러 술을 청하니 일하는 아이 주동酒童 점소이가 묻는다. “몇 냥 어치 드시겠습니까?” 당시 연경에서는 술을 무게로 달아 팔았다. 연암은 넉 냥 어치 시킨 뒤 술을 데우러 가는 점소이에게 그냥 차게 가져오너라 한다.

미리 탁자위에 있던 작은 술잔 종지를 모두 쓸어버린 뒤 커다란 술잔에 술을 부어 마신다. 청 왕조 때는 술 마시는 법도가 엄했다. 술은 꼭 데워서 마셔야 했고 술잔은 작은 호련이며 천천히 술을 부어 마시는 게 법도다. 연암은 술을 데우지도 않았고 술잔은 함지박만한 그릇으로 했으며 천천히 마시는 것이 아닌 벌컥 벌컥 단숨에 들이 마시는 광완통음주법廣碗通飮酒法을 썼다.

이를 본 주변 청인들은 감히 두려워 벌벌 떨었다고 열하일기는 기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엄청 많이 마셔댄 사람들이 있었으니 경양강에서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는 무송武松이 그다. 경양강 입구 주막 사립문 없는 마당을 들어서면 왼편으로 영서楹書가 있는데 곧 주도(?)酒道이다. 닭 벼슬을 잘라낸 피로 쓴 주서朱書인데 삼완불과강三碗不過岡이다. ‘술 세 주발을 마시면 취해서 언덕을 넘을 수 없다라는 주령酒令인 셈이다.

주막 앞 고개는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이므로 술 석잔 마시면 취해서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니까 고개를 넘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자 무송이 소리친다.

그까짓 호랑이가 뭐 대수라고 고작 술 석잔 마셨다고 못 넘을게 뭐냐. 어서 술 더 가져 오너라라고 소리치니 주막 주인장이 되레 큰 소리다.

우리 주막의 술은 향기가 술병을 뚫고 난다 해서 투병향透甁香이라는 최고의 술이지만 이 술을 마시고 문을 나가자마자 술이 워낙 독해서 금방 취해 쓰러진다 하여 출문도出門倒라 불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독한 술을 어찌 그리도 많이 드시렵니까?”

술을 마실 때는 두 개의 음주법이 있다. 마시는 갈주喝酒법과 먹는 흘주吃酒법이다. 당나라 말부터 송나라에 이르기 까지 주법은 갈주喝酒가 아니라 흘주吃酒. 당시 패관문학을 보면 술을 마신다는 갈주喝酒가 아닌 먹는다는 흘주吃酒를 쓴 문장이 많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18잔을 단숨에 들이 킨 뒤 고개에 올라 호랑이를 맨 손으로 때려잡는다. 여기 18잔에서 8이라는 숫자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9수는 귀신이 꼭지를 따는 날이고 7수는 귀신이 쉬는 날 즉 인간에겐 행운의 날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9수에는 대부분 천성 살이 숨어있어 아홉수를 조심해야 한다는 속설이 있는 거다. 그런데 8수는 귀신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숫자이지만 기독교회에서는 유독 8수를 구원의 수라 한다.<베드로전서 3:20>

술과 시로 일세를 풍미한 이태백은 월하독작月下獨酌이란 시에서 꽃밭 가운데 술 한 항아리<화간일호주花間一壶酒함께 하는 이 없어 홀로 마신다.<독작무상친獨酌無相親>”라고 했다. 또 장진주將進酒에서는 양과 소를 삶아 그저 즐겨야 하나니<팽양재우차위락烹羊宰牛且爲樂> 한번 마시면 반드시 삼백 잔은 마셔야 하리<회수일음삼백배會須一飮三百杯>” 그야말로 엄청 큰 주발에 술 마시고<음대완주飮大碗酒> 엄청난 크기의 고깃덩어리를 안주로 뜯는 것<식대괴육食大塊肉>이다.

당시에는 통족이라 하여 족발을 삶되 썰지 않고 통으로 뜯어먹었다. 여기서 그 유명한 37세 때 항주통관<항주시장>으로 있으면서 돼지를 통째로 삶아 술안주로 먹었다는 동파 육이 나왔다.

술은 항아리로 마시고 고기는 덩어리로 뜯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에 족하더라<항완음주缸碗飮酒 괴별육덕塊別肉肉德 장부일생즉지족丈夫一生則知足>”

장부일생즉지족丈夫一生則知足에서 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경을 원어를 중심으로 석의하는 것을 제일 목표로 삼았던 주경신학자註經神學者 정암은 생을 일러 이전의 모든 삶이다고 했고 축자역逐字譯으로 성경을 풀어냈던 일립은 생을 파자하기를 소우+천천히 첫걸음 내디딜 일<사전적 표기는 한일> = 즉 삶이란 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듯이 느릿하게 그러나 조심히...’ 라고 풀이를 했다. 그러면서 사족을 달기를 날생자를 왼쪽으로 조금 돌리면 쟁기 모양으로 밭을 가는 형상과 대궐문의 기둥 형상이 된다

이는 곧 어려서 펄펄 놀다가 어른이 되어 소가 된 게으름뱅이처럼 불학작핍부不學作乏夫이거나 어려서부터 미련둥이 소마냥 우직하게 공부, 등과해서 임금과 겸상하는 상대작필부上對酌匹夫이거나이다. 즉 어떤 인생이든 인생이란 두 개의 길이 놓여있다는 말이다 물론 선택은 누구의 몫도 아닌 자신의 몫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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