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낯선 칫솔 두 개
■ 모시장터 / 낯선 칫솔 두 개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18.11.22 09:55
  • 호수 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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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순 칼럼위원
신웅순 칼럼위원

나는 내 아내와 만나 2달만에 결혼했다. 뿅 가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내나 내나 혼기를 놓쳐 웬만하면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인륜지대사를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느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서로 싫지는 않았던지 인연이라 할밖에 달리 없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결혼이란 도박이나 다름 없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하지 않았는가. 몇 년, 몇 십년을 살아보아도 다 알 수 없는 것이 부부 지간이다. 그러니 잘된 만남인지 잘못된 만남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옛날 어머니가 나보고 한 말씀이 생각난다.

, 니 아버지하고 십년을 살았는데도 누구인지 모르겠다.”

그렇다. 살아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내 아내도 그럴 것 같다. 더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부부지간이라도 나름대로의 비밀은 있는 것이다. 프라이버시를 침해까지 하면서 말할 필요가, 알 필요가 있을까.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을 굳이 말 해서 마음 상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누구나 다 나름대로의 비밀은 갖고 있다. 부모와의 비밀, 부부 간의 비밀, 형제 간의 비밀, 친구와의 비밀 등 얼마나 많은 비밀들을 가슴에다 묻어두고 사는가. 한편으로는 비밀 때문에 아름답고 멋있는 일도 있을 때가 있다. 아름다운 비밀은 때로는 우리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그것이 격조 있는 삶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신혼 때였다. 세면대 위에 걸려있는 두 개의 칫솔이 그렇게도 낯설었다. 아니 이상했다. 장롱을 열면 내 옷과 아내의 옷이 나란히 걸려있는 것도 참으로 이상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부터는 달라졌다. 내 칫솔 옆에 아내의 칫솔이, 내 옷 옆에 아내의 옷이 없어지면 그것이 이상했다. 아내는 어디를 갔을까.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등등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따로 있는 것이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것, 아내의 것 따로가 아니라 서로가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서로가 편한 곳에 두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실 결혼 전에 연애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대신 짝사랑만 했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나는 연애에 숙맥이었다. 그래서 신혼은 아내와 연애하는 것 같았고 좀 더 지나서는 진솔한 부부지간이었던 같았다. 짝사랑도 하지 못했으면 어쩔뻔 했을 것인가. 용케도 탈없이 살아온 것은 그나마도 지난날 짝사랑했던 아픈 사랑의 성숙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아직도 세면대 위에는 칫솔 두 개가 나란히 걸려있다. 옷은 서로 따로 쓰고 있다. 여자에겐 화장품이나 거울 같은 것들이 딸려 있어야하니 그것이 오히려 편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내와 나는 자신에게 편한 대로 조금씩 삶의 방식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반세기를 함께 살다 조금은 안다 싶을 때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니던가.

칫솔 두 개 중 하나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낯선 것이 아니라 아픔일 것이다. 그것은 성숙의 아픔이 아니라 소멸의 아픔이다. 어디 소멸의 아픔이 성숙의 아픔에 비하기나 할 일인가.

왼쪽은 내 칫솔, 오른쪽은 아내의 칫솔이다. 나란히 다정한 두 고독들을 물그러미 바라본다.

비가 많이 내린 아침 출근 길이다.

빗길에 운전 조심하세요.”

오늘따라 그 말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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