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 최현옥
  • 승인 2003.11.21 00:00
  • 호수 1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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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하게 타오르는 서천군 여성 자원봉사자들의 묵묵한 실천이 있어 올 겨울은 따뜻하기만 하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 그녀들에게 이 법칙은 잘 맞아떨어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자연스럽게 형성된 주름과 노쇠해진 몸은 불변이라는 말을 허무맹랑하게 만들지만 그녀들이 타인을 생각하며 아끼는 마음은 ‘모든 것은 그 형태가 변할 뿐이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이론과 적중하고 있다.
“그냥 이렇게 만나면 즐겁고 남을 돕는 것도 즐겁고 그래서 하는 거지. 별거 없어요.”
서천군여성자원봉사회원들을 만난 지 10여분, 그녀들의 입에서는 즐겁다는 말뿐이다. 말주변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라 항상 몸으로 때운다며 너스레를 떠는 회원들은 기자의 이런 저런 질문이 귀찮게 까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10년이란 세월동안 꾸준하게 봉사를 실천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어쩌면 저런 미련스런 인내와 고집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 5년 밖에 안한 것 같은데 벌써 10년이 다되어 가네요. 저희들의 작은 손길이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절실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이 일을 놓을 수 가없어요”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모임을 운영한다는 회장 이명자(51)씨는 자원봉사자 모임의 초창기 멤버로 현재 30여명의 회원을 이끌고 있다. 매월 80여 가정의 홀로 사는 노인과 장애인, 소년소녀 가장들의 음식을 만드는 노력봉사형 회원부터 경제적 후원을 비롯해 음으로 양으로 돕는 비회원까지 이씨는 든든하다.
봉사자들이 서천군의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92년. 그러나 그녀들의 아름다운 몸짓이 시작된 것은 그보다 오래 전부터이다.
“지금은 정말 좋아진 거죠. 사실 처음에는 참 힘들었어요. 주변의 어려운 가정을 찾아보면 방안에 기어다니는 벌레하며 냄새는 얼마나 심한데요. 오랫동안 거동불편으로 씻지 못한 장애인들을 접한다는 것 역시 힘든 일이었어요”
회원 차명순씨를 주축으로 뜻이 맞는 주부 5∼6명이 시초, 문산, 판교 등 매달 2∼3회씩 찾아가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대상으로 목욕과 청소, 빨래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는 회원들은 지금은 과거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입을 모은다. 군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사랑의 반찬나누기 운동’의 일환으로 일일 찻집을 열어 기금을 모았고 겨울철 김장을 담가 나누고 있다는 이 회장은 매달 120여포기의 김치를 담그는 일 등 지역내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작은 손길을 전하고 돌아올 때 다음에 언제 오냐고 묻는 주민들과 어려운 주거환경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더욱 안타까워 발길을 돌리기 어려웠다”는 김인희(53)씨는 봉사라는 개념이 없던 서천군에 초석의 역할을 한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싶다.
“봉사자들의 활동이 입소문이 나면서 지난해 지역 업체에서 인력동원을 비롯해 도움을 주었지만 이 역시 일회성으로 그치고 있어 운영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는 이 회장은 넉넉하지 못한 여건 속에서 묵묵히 활동해 주는 회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젊었을 때는 남을 돕는 것이 힘든지 모르고 일했거든요. 그런데 나이가 먹으면서 관절염에 몸이 많이 아파요. 하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저희의 작은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데…”
관절염으로 다리를 절룩이는 김정재(56)씨는 사랑이라는 마음 없이는 활동이 불가능할 것이 다며 회원들 대다수가 50대라 젊은 사람들이 활동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이 역시 맘 같지 않다고 푸념이다.
“음식을 종일 만들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이마에 땀도 송송 맺히지만 나눈다는 즐거움에 모든 것을 잊는다”는 이 회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며 말한다.
“왼손이 하는 일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는데… 이렇게 인터뷰해도 되는 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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