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하는 사람은 목이 마르고 나서야 우물을 파는 일은 하지 않는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공부하는 사람은 목이 마르고 나서야 우물을 파는 일은 하지 않는다
  • 송우영
  • 승인 2019.09.19 10:57
  • 호수 9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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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학작한인不學作汗人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두 개의 함의를 갖는데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 나라를 세운다는 말과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평생을 땀을 흘려야 먹고살 수 있다는 말이다. 역사에 공부하지 않은 죄(?)로 이마와 등에 말로 할 수 없을 만치 많은 땀을 흘려가면서 근근이 허기만 면하며 살다 간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공부 안하고도 천하를 거머쥔 인물이 두어 명 쯤 들라면 아마도 한 고조 유방과 명 태조 주원장 쯤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어린 시절 많은 공을 들여 공부를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주원장의 경우 어린 시절 스님으로부터 글을 배웠는데 그가 말하기를 놀기 좋아하고 게으르고 거만한데다<기반낙태오其般樂怠敖> 예의도 없으면서<무례毋禮> 공부까지 싫어하는 자녀는<불학자不學子> 언젠가는<하시何時> 반드시<> 땀과 눈물로 얼굴을 씻으리라<한읍이이세안지汗泣而以洗顔之>” ‘한읍세안汗泣洗顔의 성어는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공부하지 않는 게으름에 자기통제란 없다. 공부하지 않기는 쉬우나 공부하지 않는 게으름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고조 유방의 청춘은 이보다 훨씬 더했다. 유태공劉太公유인劉仁은 아들 유방으로 하여금 화산 칼바위 절벽 굴속에 사는 괴벽傀壁에게 글을 배우도록 했는데 괴벽은 본명이 아니고 세상 사람이 붙여준 별칭으로 장량張良의 스승 황석공의 사숙師叔이라 전한다. 혹자가 말한다.<혹이언或而言> “자녀가 어려서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면<자유유근학子幼有勤學> 비록 때를 만나지 못해 한때의 곤고함이 있다 해도<즉수불우곤則雖不遇一時困> 반드시 천하가 그를 부를 것이며<필소명어천하必召命於天下>, 만약에 공부가 부족해서<약사학若舍學>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불비구不備具> 천하가 그를 부른다 해도<기중인지명其衆人之命> 공부하지 않은 탓에 스스로 능히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자불능당지自不能當之>”

반면 어려서 공부하지 않은 탓에 인생을 절딴 낸 인물이 있는데 공부하지 않은 자의 대명사로 기억되는 역발산기개세 초패왕 항우이다. 항우는 모든 면에서 다 잘 했는데 공부만 안 했다. 그깟 공부가 뭘 대수라고 맘 잡고 하면 못할 것도 아닌데 인생을 망쳐가면서까지 안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부는 피해갈 수가 없다. 덕은 쌓은 대로 가고<적선지응積善之凝> 죄는 지은대로 거두며<적악지수積惡之收> 공부는 한 만큼 살게 되어있다.<수기신수修己身守:나를 닦아 몸을 지킨다>

공부는 엉덩이를 무겁게 방바닥에 붙여놓는 것을 중히 여겨야<이중둔착以重臀搾> 먼 훗날 몸이 존엄해진다.<이후존신以後尊身> 그런 다음에<> 순서를 밟아 점차적으로 나아가야 하며<순서이점진循序而漸進> 깊이 읽고 자세히 생각해야 한다.<숙독이정사熟讀而精思> 유학을 집대성해 주자학을 세운 송나라 주희朱熹가 독서지요讀書之要에서 밝힌 공부하는 법이다. 여기서 착자는 엉덩이를 방바닥에 붙여놓는다는 뜻도 있지만 몸을 비틀어 짜낸다는 뜻으로 앉아있는 것 자체가 힘들고 괴롭더라도 온 몸을 비틀어 짜서라도 견뎌서 공부를 완성하라는 말이다.

공부가 나를 기억하는 방식은 과거 완료형이 아니라 늘 현재 진행형임을 잊지 말라. 공부하는 사람은 목이 마르고 나서야 우물을 파는 일은 하지 않는다<학자무림갈이굴정學者毋臨渴而掘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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