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이뤄 가겠습니다
서서히 이뤄 가겠습니다
  • 최현옥
  • 승인 2003.11.28 00:00
  • 호수 1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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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지각생은 없다는 백씨는 서천에 유기농업으로 활력을 불어 넣는다
‘슬로우∼ 슬로우∼ 퀵!퀵!’
이곳은 스포츠댄스 교육장소가 아니다. 지난 10월 백하주(55·시초면 후암리)씨가 심은 방울토마토가 매일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있는 600평 규모의 연동 하우스다. 입장단 같이 더딘 거북이 성장, 그러나 기초부터 차근히 밟아 가는 것이 결코 늦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해준 동화 ‘토끼와 거북이’ 교훈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곳이다.
“제가 하고 있는 농업은 왕따 당한 농업이에요”
왕따는 어느 집단에도 존재하는 것일까? 지역에서 유기농업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외길 인생을 걸어온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좀 당혹스럽다.
“그 만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제야 이 미련해 보이는 나의 농법이 땅을 살리는 것 뿐만 아니라 저를 살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간다고 하니까요”
화학비료, 농약 등 합성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 자재만으로 농업을 지어왔지만 판로를 보장받지 못해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한 백씨의 농작물들.
그러나 그는 10년 넘도록 땅을 살리며 농사를 지어 기존 농법으로 농사를 지은 토양과 비교, 토실토실한 토양을 유지해 지금은 자축의 박수를 보낸다.
“유기농업을 시작 당시 기존의 농사법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농업, 새로운 농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과가 있기까지는 해산의 고통을 비교하면 비슷할지 모르겠어요”
한국기술자협회에 가입 후 3박4일간의 교육을 받고 유기농법을 시작한 그, 기존의 농약과 비료를 대신해 수작업으로 짚단을 잘라 퇴비를 만들고 땅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특히 지역에서 유기농업인들의 정보공유와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2회에 걸쳐 전국단위 유기농업 교육을 유치했고 급기야 92년에는 한국유기농업협회 서천군지회를 개설했지만 지역 농민들에게는 냉대를 받았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고 하잖아요. 아무리 농법이 좋다고 주위 농민들에게 권장해도 효과가 눈에 띠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소용이 없더라 구요. 그렇지만 유기농업이 생명체간의 유기적인 공생을 마련해 가는 만큼 이 농법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유기농업 체험결과 기존 농업보다 노력이 2∼3배 요구되지만 장점이 많은 것을 깨달은 백씨는 사비로 퇴비를 만들어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했지만 그 역시 소용이 없었다며 고개를 흔든다.
그리고 그동안 백씨를 더욱 힘들게 만든 것은 판로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벌레를 먹는다는 것은 다른 과일보다 맛이 월등하게 높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런 것들은 싫어하잖아요. 그래서 농약을 친 농산물보다 천대받은 적이 한두 번도 아닙니다”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기존 농법으로 지은 농산물과 똑같이 취급을 당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유기농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가격이 비싸다 보니 주부들의 손이 쉽게 가지 않는다는 백씨.
그러나 진흙 속에 묻혀있어도 진주는 진주이듯 서울 가락동 시장으로 출하된 그의 채소는 1등급을 받으며 농산물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할 때도 높은 시세를 유지했다.
“세계 농업의 흐름이 유기농업으로 방향을 설정해 과거보다 허리를 조금 피게 되었고 기존에는 개념도 없던 유기농업이 주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백씨는 그 동안의 묵묵히 유기농업에 종사한 것에 보상을 받는 듯 하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거짓말 못해요. 그저 정직 하나로 농사를 짓고 있죠. 그리고 유기농업은 보약처럼 서서히 이뤄지는 농업인 만큼 인내심이 많이 요구됩니다. 서서히 이뤄지는 농업이 어려운 농업의 미래를 밝힐 것입니다.”
정직을 바탕으로 우직하게 농업에만 종사해온 백씨는 앞으로 유기농업 단지화를 위해 노력하고 유기농업 저변확대를 위해 힘쓸 것을 다짐하며 흙을 보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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