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세상의 이치와 상황을 통찰하는 여성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세상의 이치와 상황을 통찰하는 여성
  • 송우영
  • 승인 2019.12.21 02:08
  • 호수 9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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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숙정공 취춘당 송질宋軼의 처는 남원양씨南原梁氏 이조판서 눌재 양성지梁誠之의 손녀로 종친부宗親府 전첨典籤을 지낸 양원梁瑗의 딸이다.

그녀는 외할아버지 과정槐亭 권담權湛(권근權近7촌 조카) 가문의 규문閨門 공부를 이은 인물로 송질에게 시집을 와서 33여를 두었는데 유독 딸 교육에 전심전력한 인물이다. 그중 셋째이자 막내딸은 조선 500년사에서 가장 복받은 여인으로 꼽는데 생전에 3명의 영의정과 한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다.

친정에서는 아버지 송질宋軼 공이 중종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출가 후에는 남편 묵재默齋 홍언필洪彦弼이 인조 때 영의정을 지냈고, 또한 아들을 잘 키워 그 아들이 조광조의 수제자로 훗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인재忍齋 홍섬洪暹이다.

그녀가 94세 일기로 죽자 소재 노수신이 만사를 지었으니 가히 화복충당和福充堂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송질의 셋째 딸이자 묵재 언필의 처 송씨는 내조를 어떻게 했느냐보다는 아들을 어떻게 길렀느냐에 방점을 찍어볼 필요가 있다.

자식을 잘 키운다는 것은 곧 주역에서 말한 사업事業에 대한 필업례畢業禮로 인간의 최소한의 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각 집집마다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는 나름의 공부비책이 전해진다. 흥선대원군은 김좌근의 양자 김병기를 두고 이렇게 독백을 한다. “아들을 낳으려면 김병기 같은 아들을 낳아야 해

훌륭한 자녀를 뒀다 함은 곧 가문의 영광이다. 특히 송질의 둘째 아들 충좌위 호군을 지낸 송지간宋之幹의 아들 송녕宋寧은 광주목사廣州牧使를 지냈는데 그의 여식들이 양반가 내실內室 안방마님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인물이다. 이유는 선대 할머니 눌재 선생의 손녀 양씨께서 송씨 집안으로 시집을 오면서 독공비기篤工秘技를 입가入家한 후로 공부가 면면히 이어졌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양반가의 자녀교육은 주역 계사전 사업에 근거를 두는데 계사전에서 말하는 사업이란 자녀를 공부시켜 그 자녀를 일으켜 세워 천하의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원문에 따르면 위의 것을 공부하는 것을 도라 하고<형이상자形而上者위지도謂之道아래 것을 공부하는 것을 기라 하는데<형이하자形而下者위지기謂之器> 그것을 따르고 나눔이 변이요<화이재지化而裁之위지변謂之變> 실천하도록 밀어줌이 통이니<추이행지推而行之위지통謂之通> 일으켜 천하의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을<거이조지擧而措之천하지민天下之民> 사업이라 한다<위지사업謂之事業.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여기서 위의 공부를 한다 함은 건이라하여 남자 아이들이 해야 할 공부이며 아래의 공부를 한다 함은 곤이라하여 여자아이들이 해야 할 공부이다. 공자께서 주역을 묶은 책 끈이 세 번씩이나 끊어질 정도로 읽었던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하다.<위편삼절韋編三絶> 공자는 여자아이가 해야 할 공부 곧 형이하形而下의 기를 재해석하기를 군자불기君子不器라 하여 여기서 군자는 남자가 아닌, 공부하는 모든 이로 군자는 그릇에 국한 될 수 없다는 말인데 풀어 말하면 여자아이라고 해서 환경과 처지에 예속되어 소비되는 기능적 인간이어서는 아니되며 환경과 처지를 뛰어넘어 세상의 이치와 상황을 통찰함으로써 오로지 남자의 시선으로부터 소비되는 정도의 인간이 아니라 자존감 넘치는 능동적 몸짓으로 행동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만큼 공부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공부한 여인이 송녕宋寧가의 여식이었던 것이다. 예부터 입버릇처럼 하는말이 있다 집안이 잘되려면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것을 남자 집에서는 가인괘家人卦가 들어온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주역 64괘 중 37번째에 있는 유가기호 괘명으로 남편을 위로하고 아들을 귀히 여기는 현모양처 괘로 제1항이 현모요 제2항이 양처이다. 좋은 아내보단 훌륭한 엄마가 우선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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