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깃든 이발소… 아∼ 옛날이여
추억이 깃든 이발소… 아∼ 옛날이여
  • 최현옥
  • 승인 2003.12.12 00:00
  • 호수 2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기는 나를 비롯해서 모두 골동품 투성이야"
원색의 나팔바지와 쫄티에 맨발의 슬리퍼, 도끼빗, 보글보글 볶아댄 원형파마, 좌판을 펴고 앉은 뽑기, 달고나 같은 불량식품 장사치들…. 산업근대화가 시작되는 60∼70대의 풍경들이다. 이런 풍경들은 ‘복고풍’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영화나 광고에서 기성세대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코드가 되고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현대의 문화가 되고 있다.
그러나 촌스러움이 추억을 재현하는 데는 소비문화의 상품 형식을 빌어 의도적으로 개발돼 면서 가끔 씁쓸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인위적이지 않은 촌스러운 풍경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그것이 추억의 장소가 아닌 일상을 만드는 곳을 찾았다.
장항읍 화천동에 위치한 자립이발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페인트로 글씨를 쓴 나무간판을 보며 미닫이문을 빠끔히 열어 보았다. 이곳은 60년대 이후 시간이 멈춘 듯하다. 연탄을 사용하는 작은 난로와 희뿌연 유리, 손잡이가 헤진 의자, 서랍장, 시 구절을 수놓은 액자 등 이발소 안은 낡은 필름이 돌아간다. 서둘러야 할 스케줄도 없고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도 없다.
“여기는 나를 비롯해서 모두 골동품 투성이야. 손님이 없을 때 이것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옛날 생각이 나”
오랜 세월 이발소와 닮은꼴이 되어버린 이발사 최낙술(67)씨, 그의 인간미는 넉넉함으로 다가오며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 과거 휴일에는 어린이들까지 포함해 40여명의 손님이 찾아,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는 최씨는 지금은 일주일에 1∼2명 정도의 손님을 받는다. 정막감 마저 감도는 썰렁한 이발소 안에서 긴 담배연기를 내 뿜는 그는 이제 생계 유지가 아닌 소일거리 삼아 일을 하고 있다. 종종 향수를 나눌 수 있는 같은 나이 또래의 친구들이 찾아오며 이발소는 노인정 역할을 하고 있다.
“나도 한때는 날렸는데… 이건 내 자랑이 아니고, 과거에는 여러 이발소에서 서로 오라고 난리였거든. 이제는 다 옛 이야기가 됐네”
최씨가 이용업에 종사한 것은 17살 때 이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머리 깎는 기술을 배웠고 동네사람들에게 무료로 봉사를 했다. 그리고 군대에 입소 후 이발을 담당했다. 자격증은 없었지만 실전에서 갈고 닦은 실력은 인정을 받았고 스카웃 제의가 심심찮게 들어왔다.
“과거 이발료가 40원정도 했는데 지금은 8천원 하니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짐작이 가지. 과거나 지금이나 삭!삭!삭! 머리 자르는 가위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게다가 손님들이 흡족해 하는 모습을 보면 자부심도 느끼지”
60년대 정식으로 자격을 취득하고 9번의 이사 끝에 지금의 이발소에 둥지를 마련한 최씨는 지금은 5평 남짓한 건물에서 이발을 하지만 과거 종업원을 포함해 3명이 일했으며 의자도 5개정도 놓고 이발을 했다.
“지금은 남자 손님들도 미용실 가잖아 과거에는 처녀들이 이발소 많이 찾았어. 어린 꼬마손님들은 의자 위에 판자를 놓고 머리를 잘랐는데 기기가 안 좋아 머리를 뜯겨 우는 경우도 많았지. 참, 그 당시는 이와 서캐가 왜 이렇게 많은 지… 소독은 필수였어”
자신이 말하고도 찜찜한지 머리를 긁적이는 그, 특별하게 유행하는 스타일도 없고 머리를 퍼머넌트 하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이발소를 찾았다고 전한다. 미용의 발달로 남자들도 미용실을 찾으며 이발소는 퇴보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기술은 아직도 녹슬지 않은 실력을 자랑한다.
“지금 써도 손색이 없는 것들인데 이걸 보면 옛날 물건이 지금 것보다 훨씬 더 튼튼한 것 같아”
10여 년 넘게 사용하고 있지만 잔 고장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드라이기를 들어보이는 최씨, 그가 사용하는 기구는 참 단출하다. 빗을 비롯해 2종의 가위와 면도칼, 바리깡 등이 전부이다. 그리고 이제는 사용이 불가능한 이가 맞지 않는 바리깡과 빗, 가위 등을 내 보이며 하나하나의 사연과 내력을 더듬는다.
“점점 이발소가 설자리가 없어지고 소외를 받고 있다구? 그게 맞는 말이지. 그러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40여년 나를 믿고 찾아주는 단골이 있기 때문이야. 단골이 있다는건 관심이 있다는 것이거든”
최씨는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지만 이발소가 더 이상 향수의 장소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말한다.
“요즘 복고가 유행이라고? 옛날이 그립다는 건 지금 사는게 각박하다는 거겠지. 우리 이발소에 와서 푸근한 마음을 느끼고 간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