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복 받은 노인’
‘우리는 복 받은 노인’
  • 최현옥
  • 승인 2003.12.12 00:00
  • 호수 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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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평생 문장리에서 살아온 노인들은 인생의 동반자가 되고 있다
“윷이여∼”
위로 던져진 윷가락이 도르르 구르자 노인들의 얼굴에는 희비가 가린다.
“에이 또 개네…”
어떻게 말을 놓아야 상대방을 이길 수 있을까 서로 의견이 분분하고 말싸움으로 번지는가 싶더니 허허 웃는다. 윷판이 끝날 때까지 방안은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우리 동네는 불화란 없어. 일년 내 이렇게 모여서 윷을 놀면서 지내지. 늙어서 외롭다는 말 잘 모르고 살어”
윷놀이를 하기 위해 이봉순(92)씨 집에 모인 문산면 문장리 화리마을 10여명의 노인들. 대부분의 농촌이 그렇듯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급격하게 고령화 사회를 맞은 시골 풍경은 을시년스럽다. 게다가 추수를 마치고 마땅한 소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화투를 하거나 약장사 구경에 나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난 노인들의 모습은 너무나 건전하고 건강하다.
“이거 좀 봐, 얼마나 가지고 놀았나 이제는 윷이 거의 닳았어. 언제부터 윷놀이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바꾼 윷가락만 해도 손으로 곱기가 어려워”
농사철에 텃밭을 가꾸는 할머니들은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대청마루에 모여 윷을 놀고 겨울에도 매일 모임을 갖는다. 노인들에게 윷놀이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 치매예방은 물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으며 서로의 안부인사가 된다고.
“자식들이 올라오라고 하는데 못 가지.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답답한 서울에서 어떻게 살어”(이영울)
60여 채의 가구가 옹이종기 이마를 맞대고 살아가는 문산면 문장리. 최고 젊은 나이가 50대인 이곳은 80대만 해도 10여명이나 된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60여 년 살아왔지만 평생 큰 일없이 자식들 훌륭하게 성장시켰다는 이씨는 문장리가 최고인줄 알고 살아간다.
“옛날에는 1년에 한번씩 동네사람들이 도시락을 쌓아 가지고 천방산으로 놀러갔거든. 이곳 노인들이 무병장수하는 이유도 아마 저 천방산 때문이 아닌가 싶어”
매일 모여 윷을 놀며 웃음이 끊이지 않아서 그런지 얼굴의 주름마저 아름다운 풍경이 되는 10여명의 노인들은 대부분 80살이 넘었지만 허리하나 굽은 사람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장수촌이다. 게다가 겨울철에도 소소한 집안 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는 이봉순씨는 채식을 주로 하고 좋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장수 비결이라고 전한다.
“저는 남편이 몸이 안 좋고 저 역시 허리가 아파서 가끔씩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정정하게 놀고 계신 어르신들을 보면 참 좋아요”
최근 93세인 시어머니를 여인 조한희(69)씨는 노인들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나 종종 이곳에 들른다며 노인들이 윷을 노는 것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난다.
“매일 이렇게 모이다 보니 하루라도 안나오는 사람 있으면 걱정되고 무슨 일 있나 싶어서 전화도 하고 그러지. 건강이 악화돼서 안나오는 사람 있으면 참 속상해”
박종례(70)씨의 오랜만의 외출에 다들 걱정이다. 씨족사회로 구성된 문장리. 이곳에 모인 노인들은 모두 친척관계이다. 타 지역에서 시집와서 만난 사이지만 오랜 친구가 됐고 앞으로 도 삶의 동반자이다.
“매일 모여 노는 것이 입소문이 나면서 먹거리를 제공하는 사람도 있다”는 김극인(85)씨는 “마을회관이 없어 마땅하게 노인들이 모일 장소가 없다”며 시설이 보완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게다가 오지마을을 순회하며 노인 대상 건강프로그램이 군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 같다며 교육의 기회가 오기를 소망한다.
“인생의 막차를 탄 사람들이 뭐 특별할 게 있나…. 이렇게 즐겁게 살며 한 평생 마무리하는 것도 복이지”라며 노인들은 윷가락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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