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으로 그녀는 당당했다
직업인으로 그녀는 당당했다
  • 공금란
  • 승인 2004.01.09 00:00
  • 호수 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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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는 상사, 사석에선 누이… 년 매출 12억 원
“영업은 나를 파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말하는 이명순(43세)씨. 그녀는 색다른 직업을 가진 여성 중에 하나다. 농기계 영업사원 3년 차, 깐깐한 외모와는 달리 제법 너스레를 떠는 아줌마다.
보통 여성들이 많이 하는 보험이나 생활용품 판매도, 일반 자동차 판매도 아닌 농기계 영업에 우연치 않게 뛰어들어 매년 도내에서 판매 실적 수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L농기계 서천대리점 매출이 23억, 그 중 그녀가 차지하는 것이 12억 원으로 그녀의 연봉은 공식적인 2천 5백만 원에 +α로 여성의 수익으로 그렇게 만만치 않은 액수다.
명순 씨는 영업을 생활로, 생활자체가 영업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한다. 농기계 판매영업을 시작하면서 여타 여성들이 영업을 하면서 받게되는 ‘눈총’을 자신도 예외 없이 받아 초기엔 힘들었단다.
“농기계를 팔다보니 대개 만나는 대상이 남자고 어쩌다 고객과 마주앉아 식사라도 할라치면 공연한 오해를 받아 맘 상할 때가 많았다”며 웃으며 회상하는 그녀에게 이젠 그런 것쯤이야 너끈히 수용하는 여유가 묻어난다.
명순씨는 농민의 딸이고, 직접 농사도 지어봤지만 농기계를 직접 다뤄본 경험이라곤 없는 상태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이앙기, 트렉터, 콤바인… 등 수백에서 수천만 원씩 하는 농기계 전문가가 다되었고 자신이 판매한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질 줄 안다.
“제가 판매한 기계에 대해선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기계에 대해 전반적인 상식을 충분히 습득하고 제손에서 해결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A/S팀을 직접 연결해 줍니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철두철미하다.
논두렁에서, 집에서 고객들의 일손을 돕는 것은 물론, 완벽한 사후봉사 고객들에게 인정받은 그녀는 이제 혼자 영업하지 않는다. 인연을 맺은 고객이 새로운 고객을 연결해주는 일이 흔해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노하우로 삼는 것 중의 또 하나가 ‘가정적인 분위기의 직장 만들기’이다.
사업장의 직원들은 대개 30대 전후의 남성들. 집을 떠나 숙소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에겐 어머니, 누나 같은 가족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명순 씨는 이런 직장 내에서 기꺼이 인생 상담사도 되어주고 때때로 맛난 요리를 해주는 등 가족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도 최선을 다한다.
이런 명순 씨는 3D 업종에 속하는 농기계수리를 맡은 청년직원들이 오래오래 직장에 머무르게 하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있어 “이 상무님은 업무중에는 깍듯이 상사지만 업무가 끝나면 다들 누나라고 부른다”는 게 L농기계 서천대리점 총무로 함께 일하는 동료의 이야기다.
명순 씨는 단순히 돈을 버는 일에서 이젠 생활이 되어버린 농기계판매 영업상무 일, 자기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는 캐리어우먼이다.
중년 여성이 농촌지역인 서천에서 특별히 배운 것 없이 전문직업을 갖는 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나 다름없고, 더욱이 요즘처럼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집에서 살림하던 ‘별 볼일 없는 아줌마’가 당당한 직업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명순 씨의 색다른 도전과 성공은 중년 여성들이 간과할 수 없는 ‘아줌마의 힘’이란 말이 적용 될 수밖에 없다.
家和萬事成이라했던가, 이처럼 그녀가 자신의 일에 몰두 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은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스스로 자기 일을 하게 된 나이가 된 두 아들들의 이해와 도움, 가사 일을 기꺼이 분담해주는 남편”이라는 게 그녀와 동료들의 말이다.
늦은 귀가, 남성 고객들과의 만남, 잦은 출장 이런 상황을 쉽게 받아주고 이해해 주는 건 가족들의 절대적인 신뢰가 뒤받침 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이 트랙터는 54마력으로 …” 가냘픈 몸으로 거대한 농기계 옆에 서서 고객을 상담하는 그녀는 오늘도 직업인으로 당당하기만 하다.
그녀의 소망은 취재하는 기자가 연민을 느낄 만큼 소박하다. “남성 고객들이나 직원들이 이성으로가 아닌 직장인 그 자체로만 봐줬으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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