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선 고소한 냄새가 난다
그녀에게선 고소한 냄새가 난다
  • 공금란
  • 승인 2004.01.19 00:00
  • 호수 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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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에서 서천까지 긴 인연의 끈- 신진식·이춘실 부부
서천에서 비인 방면으로 향하다 국도 21호 선을 벗어나 종천에서 판교길로 접어들었다. 설 연휴 전후로 혹한에 녹을 듯하면 다시 내린 눈이 국도와는 달리 다져지고 다져져 신진식 씨(44세) 집을 찾는 3Km 남짓 마을길은 하얀 미끄럼 판이고 길가엔 눈꽃나무들이 즐비하다.
96년 12월에 결혼했다니까 진식 씨의 아내 이춘실 씨(34세)가 시집오던 날도 오늘과 같지 않았을까. 농촌 노총각에게 꽃다운 나이에 시집온 춘실 씨, 그녀의 고향은 중국 길림성 유화현이다. 흔히 듣는 소문이지만 실상 우리주변에 흔하지 않은 농촌 총각과 조선족 처녀의 혼사였다.
“환경이 바뀐 탓에 첫해는 힘들어하더니 생각보다 빨리 적응하더군요” 남편 진식 씨의 말이다. 그리고 바로 예쁜 딸을 낳았고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삼 동네는 물론 서천바닥에 소문날 정도로 착하고 신실한 남편은 열심히 일했다. 자기 집일뿐 아니라 일손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니며.
딸아이 돌 무렵, 그러니까 둘째를 잉태했을 때 진식 씨 가정에 엄청난 재앙이 찾아왔다.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후진하던 트랙터에 깔려 뼈가 부서질 때로 부서지고 장기파열까지 심해 다 죽은목숨이었다.
‘잘살까?’ 조선족 색시에 대한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그녀는 꿋꿋하게 남편의 병원바라지며 돌 지난 아이 또 다시 태어난 아들아이를 대한의 아들딸로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고 있다. 그들의 애틋함에 신도 감복했는지 2년여 대학병원 신세를 진 끝에 회복하고 농사일과 직장을 병행하며 힘껏 일해왔다.
춘실 씨 집을 찾던 날, 그녀는 집에 없었다. 마을회관을 임대해 살림을 꾸리고 있는 그녀의 집, 노모와 어린이집 가방을 맨 남매가 눈길에 늦어지는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일나갔으리라 믿었던 춘실 씨의 남편이 내의 바람으로 욕실 문을 나왔다. 놀라는 기자의 반응에 “일 못나간지 6개월 째네요, 위암 3기 진단 받고 지난해 8월에 수술을 해서…” 진식 씨의 말끝이 무너진다. “그나마 농사나 짓고 있었으면 발견도 못했을 텐데 직장이라고 나가니까 종합검진 받을 기회가 있었지요. 증상이 전혀 없었거든요” 진식 씨는 넋두리처럼 살아 있음 자체를 감사하는 듯 너무도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며느리 춘실 씨의 거취를 묻는 말에 “김 공장에 일 나갔다우. 걔가 고생이 많어” 시집올 때부터 며느리가 예뻤다는 시어머니, 병치레하는 아들 몫까지 고속도로 공사장이며 김 공장이며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살림을 떠맡고 있다.
춘실 씨가 일 한다는 비인 선도리 모 전통식품 작업장을 찾는 길 역시 빙판에 좁은 농로라 만만치 않다.
작업장 문을 열자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정신 없이 밀려오는 김 굽는 작업대 앞 서있는 그녀, 아침 8시전에 집을 나서 저녁 8시나 돼서 집에 돌아가니까 무려 10여 시간을 그렇게 서서 포장직전의 김을 반듯하게 정리하고 또 정리하는 것이다. 하루종일 서 있노라면 다리도 붓고 통증도 오련마는 어렵지 않단다.
고향에 가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제는 익숙해져서 별로 그렇지 않아요” 3년 전에 친정 나들이했다는 춘실 씨, 올 설, 새해인사도 전화로 대신한 그녀에게선 고소한 냄새가 난다. 김 굽는 작업을 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감당하는 당참에서 피어나는 고소한 냄새.
1천여 평 남짓 짓는 농사로 다섯 식구 살림하기란 턱도 없는 일, 그녀는 낯설 기만했던 서천 땅에 시집와 살림꾼이 되어가고 있다.
“소망이랄 게 있나요. 남편이 너무 착해서 다른 사람의 고생까지 대신하나봐요, 그저 가족들이 건강하기만 바랄 뿐이죠” 그녀의 꿈은 소박했지만 절실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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