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왜 가냐고 묻는다면
여의도에 왜 가냐고 묻는다면
  • 공금란
  • 승인 2004.02.13 00:00
  • 호수 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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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읍 삼산리에 사는 문제상 씨(50 사진)는 2월 9일, 또 여의도의 농민 집회에 참여했다.
힘겨워 해마다 농사 면적을 줄이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만여 평의 논농사를 지었다. “그래도 아직은 그럭저럭 버티지만 수입개방 압력이 올해가 고비라…” 말끝을 흐리는 문씨다.
문씨는 10년 넘게 소위 말하는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왔다며 이번 서울행은 더욱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한-칠레FTA’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기 때문이다. 국회가 개회되는 오후 2시에 맞추기 위해 새벽잠을 설치고 나왔지만 정신은 더욱 뚜렷하다고 했다.
잠시 쉬는 서산휴게소에서 얼핏 본 문씨의 표정은 더욱 무거워졌다. 서울에 진입하면서 곳곳에 배치된 전경들을 보고 “밥보다 고추장이 더 많네”라며 한마디 뱉는다. 집회하는 농민들 숫자보다 진압하는 전경들 수가 많다는 말이다.
이날 국회에 상정된 안건 중에 ‘한·칠레FTA’ 비준안과 더불어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된 ‘이라크 파병’ 동의 안이 있었다. 이를 반대하는 여러 시민단체와 한총련집회가 맞물려 있었고 따로 진행하다가 오후 3시 30분 합류했다.
국회로 진입하려는 시위대와 막으려는 전경들 사이, 돌이 날아다니고 물세례가 쏟아져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여기저기 검은 연기와 불길이 솟아오르자 동료들 걱정에 문씨는 몸둘 바를 모른다. 여기저기 쓰러지는 사람들, 그중에 서천에서 함께 올라간 사람들도 있었다.
어둠이 깔리자 부상자는 100여 명에 가깝게 속출했다. 오후 7시 경 1차로 연로한 농민들이 귀향하고 문씨는 9시 경 2차 귀향 단에 합류했다.
“왜 여의도에 가냐고 묻는 다면 농민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줄라고”라고 말하는 문씨다. 내려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한·칠레FTA’ 비준안이 잠정 연기됐다는 국회 소식을 접했다. 일부의 승리라고 모두 환호하며 가슴을 쓸어 내리는 건 한 순간, 또 국회 상정일자에 맞춰 상경해야 하는 것이 내심 부담스럽기만 하다.
문씨는 앞으로 몇 번이고 여의도에 갈 작정을 하면서 자정이 넘어 마중 나온 딸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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