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아랫사람에게 물어 문文의 경지에 이른 인물 공어孔圉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아랫사람에게 물어 문文의 경지에 이른 인물 공어孔圉
  • 송우영
  • 승인 2022.02.10 00:48
  • 호수 108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자의 위대한 점은 인류에 배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공자에게 있어서 배움이란 하늘이 인간 개개인에게 준 존재의 이유를 보듬어 각자의 삶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는 것이다. 공자는 이것을 한 글자로 압축하는데 곧 인이다.

을 생활 속에서 습관화하는 방법을 논어 개권 첫머리에 명토박아놓기를 학이시습으로 시작되는 배움이다. 학이시습學而時習이라는 사자성어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논어 첫권 첫문장으로 쓰이게 됐는지는 여러 개의 학설이있으나 분명한 것은 논어 499문장 중에서 가장 위대한 천고에 길이 남을 한 문장을 고르라면 학이시습學而時習을 따라갈 문장은 없으리라.

인간으로 태어나 인성바른 인재로 성장하는 데는 단 하나의 행위만 필요하다 곧 배움이다. 명심보감 권학편勸學篇에 실린 주자의 금언은 이를 뒷받침한다. 주자는 말한다.

“<주자왈朱子曰>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금위금일불학이유내일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올해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도 말라.<물위금년불학이유내년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해와 달은 쉬지 않고 흐르나니<일월서의日月逝矣> 세월은 나를 기다리지 않느니라.<세불아연歲不我延> 오호라, 늙어버렸거늘<오호노의嗚呼老矣>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랴.<시수지건是誰之愆>”
이글은 고문진보에 있는 글을 고려말 문하시중에 있던 추적이 명심보감을 수찬蒐纂<여러 책에서 가려뽑다>하면서 고문진보에 실린 여러 개의 권학문 중에서 으뜸이다 생각되어서 자신의 명심보감에 수찬했으리라. 고문진보에는 모두 116문의 권학의 글이 실려있다. 1가는 사마광의 권학가勸學歌이며 1남은 한유의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이며 6문은 권학문勸學文으로 1백거이의 권학문勸學文. 2진종황제의 권학문勸學文. 3인종황제의 권학문勸學文. 4유영의 권학문勸學文. 5왕안석의 권학문勸學文. 그리고 6번째로는 한참 후대사람 남송시대의 학자 주자의 권학문勸學文이 그것이다.

이중에 압권은 남송 때 학자 주자의 권학문임에는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처럼 배움이라는 것은 공자를 시작으로 주자를 거쳐 장장 2천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순간이라도 사람살이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사람살이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많은 물음들이 있다. 모든 물음들의 출발은 배움이요 답 또한 배움일 것이다. 배움의 시작은 앎이 아니라 모름에서부터다.

모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의 반대말로 이해하면 하수다. 내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게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배움은 시작되어야 한다.
하루는 자공이 물었다. “위나라 대부 공어孔圉는 어찌하여 문이라는 시호를 씁니까?”

중국이나 조선이나 훌륭한 신하가 유명을 달리하면 시호諡號를 내리는데 문가 들어가는 시호가 가장 크다 여겼다. 이는 공부를 많이 한 신하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인 것이다. 자공이 봤을 땐 공어孔圉는 도량은 좁으며 덕이 훌륭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문적으로 빼어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군주로부터 문이라는 시호를 받아 그의 사후에 모두들 그를 부를 때 공문자孔文子라 불렀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자공이 스승 공자께 따지듯 물은 것이다. 공어가 죽은 년도가 대략 노애공魯哀公12-13년 무렵으로 당시 공자는 노애공魯哀公164월에 죽었으니까 공자 나이 70세 무렵에 공자의 명망은 하늘을 찔렀음을 감안해서라도 노 애공이 대부 공어에게 문이라는 시호를 내림에 공자와 상의했다는 전언이 있다. 즉 공자가 반대했다면 공어가 시호를 문으로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공자의 서열 3위의 제자 자공은 이점을 스승께 따진 것이다. 이것이 논어 공야장편5-14문장과 논어 헌문편14-19문장에 2회에 걸쳐 설명되어지고 있다.

자공의 따지듯한 물음에 대한 스승 공자의 답변은 네글자로 압축된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 그것이다. 즉 위나라 대부 공어는 대부라는 높은 신분에도 모르면 아랫사람에 묻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실행했다는 말이다. 바로 이점이 문으로 추앙받을 만하다는 것이 공자의 설명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화려하고 좋은 옷을 입는 것조차도 가려야 하는 법이다. 순자집해 자도편<송기채역 전통문화연구회>에서 스승 공자가 제자 자로의 복장을 탓하는 대목이다. 이런 꾸지람 후 자로는 평생 베옷만 입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