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오면
4월이 오면
  • 뉴스서천
  • 승인 2004.04.02 00:00
  • 호수 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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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이 터지고 담장밑에는 소복소복 제비꽃이 피어났다. 마서면 합전 동백꽃 마을에는 동백이 한창 어우러져 축제의 날(4월10일)을 기다리고 있다. 아침이면 봄 안개가 온 마을을 촉촉이 적셔주고, 대지는 깊은 호흡을 한다. 요란한 새소리에 아침잠을 설친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가. 봄이 되면 생명의 신비 앞에 두려움마저 느낀다. 봄빛에 취해 들에서 일하던 중, 30년 만에 친구가 서울에서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오빠, 정말 오랜만이군. 전원에서 자유롭게 사네.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야”
“무슨 소리. 마지못해 살아왔어. 요즘은 왠지 살아있는 게 부끄러울 때가 있더군. 바람 빠진 고무풍선처럼 쪼글쪼글한 몰골로 밖에 나가는 것도 좀 그렇고. 내 딴엔 숨어산다고 하는데도 가끔 사람들이 찾아오면 좀 멋쩍을 때도 있지.”
나의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모습을 대하고 그녀는 걱정스선 표정으로, “오빠, 부인은 있어?”하고 묻는다.
“거기 남편은 뭐하지?”
“D 일간지에서 일해.”
“아니, D 일보라면 탄핵소추를 부추겼던 신문이잖아. 탄핵 가결을 의회주의 승리하며 희한한 소리를 해대던 신문이잖아. 왜 하필 D 일보야. 나하고는 코드가 맞지 않는 신문인데…”
“오빠, 오랜만인데 정치 얘기 그만 합시다.”
“나 요즘 살맛 나. 호남에서 민주당이 흔들리고, 충청도에서는 자민련이 추락하고, 가난한 서민들의 정당 민노당이 뜨니 한국 정치에 희망이 보여. 선거 때마다 악마의 주술이라는 지역주의가 조금씩 해소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더군. 그런데, 역사 앞에 사죄해야할 유신 망령이 되살아나 재래시장을 누비고 다니며, 영남의 지역감정에 군불을 지피려 하니 걱정이 돼. 영남이 변하고 조, 중, 동이 변해야 나라가 살아. 지역주의에 집착하여 개혁을 거부하는 보수세력과 권위주의 틀에 안주하여 사회변화를 담아내지 못하는 정치 세력에 대해서 4월은 잔인한 심판의 달이 될 걸세. 커피가 식었어. 우리 정치 얘기 그만하고, 벚꽃이 피면 다시 만나자고.”
이젠, 의젓한 검사의 엄마가 된 그녀는 떠났다. 20대의 모습과 50대의 그녀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서 오버랩 되며 잠시 혼란스러웠다.
나는 멘델스존의 ‘봄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호미자루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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