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즐겨라, 곧 그리움이 되리니
고통을 즐겨라, 곧 그리움이 되리니
  • 최현옥
  • 승인 2004.04.16 00:00
  • 호수 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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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조씨는
장애우들의 영원한 친구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하지 말아라./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러시아 시인 푸쉬킨, 그는 ‘삶’이라는 시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한치 앞도 예측 불허인 인생길, 굴곡의 삶에서 장애인 상담사로 활동하는 조부연(40)씨 역시 삶을 인내하며 즐거운 날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고전날 불길한 징조조차도 없었어요. 저희 남편이 저에게 잘 갔다오라고 인사도 했는걸요.”
곱게 자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행복한 삶을 꾸려가던 평범한 주부 조씨. 꿈 많던 그녀는 1997년 세상으로부터 배반당했다. 직장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기 위해 강경 부근을 지나던 아침, 마주 오던 자동차가 그녀의 차를 덮친 것이다. ‘장애인’ 이제 그것이 그녀의 타이틀이 됐다.
“우리는 흔히 삶이 힘들 때 뼈를 깎는 아픔과 창자가 찢어지는 고통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이 고통을 직접 경험해 봤어요.”
이젠 아주 오래된 이야기라는 듯 밝은 표정으로 사고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말하는 조씨. 그러나 아직도 그 순간만은 아찔하다. 소장이 파열되고 허리뼈가 부러져 5개월 동안 병원신세를 지고 그녀는 지체장애3급 판정을 받았다. 사람들은 외관상으로 그녀가 너무 평범해 보여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날마다 찾아오는 허리통증에 남 모를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받고 있다.
“제 삶의 신조요. 웃고 살자 예요. 사실 허리 통증이 심해서 오래 앉아있기도 힘들어요. 저 울기도 많이 했어요. 근데 사람들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웃음을 전하는 것이더라구요”
‘살인미소’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을 만큼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조씨. 알고 보니 그녀에게는 숨겨진 삶의 굴곡이 많다. 매일 찾아오는 신체적 고통 속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남편 덕이다. 그녀가 사고나기 몇 해 전 주유소를 경영하던 남편이 전신 55%의 화상을 입고 사망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던 것. 다행히 정신력이 강해 치료를 잘 받아 회복됐으며 현재는 사회생활도 열심이다.
“다시 그 길을 가라면 못 가지만 삶의 고통은 저를 성장시키고 좋은 인생경험인 것 같아요. 앞으로 저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지만 밑바닥까지 가봤기 때문에 견딜 수 있어요”
고통을 삶의 거름으로 삼고 내일을 가꾸어 가는 그녀. 지나간 과거가 어느 날은 그리움이 되기도 한다. 그녀가 삶의 에너지를 충전 받는 곳이 또 있다. 다름 아닌 직장에서 장애인 상담사로의 역할이다.
“저는 장애우들의 누나이며 엄마이죠. 우리는 정말 가족이예요. 이 친구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너무 행복해요”
양치질 법, 식사 양 조절, 이성문제 등 아주 사소한 생활 습관에서부터 비장애인과 어울리는 방법 등 20여명의 정신장애우들의 일상을 돌보고 있다. 눈높이 교육으로 그녀는 장애우들에게 일명 ‘인기짱’이다.
“저의 상담은 사랑이예요. 같은 장애인으로서 진정으로 아픔을 알기 때문에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동고동락을 합니다.”
장애우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고통받고 어려운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돕고 싶고 안내자 역할을 하고 싶다는 조씨. 현재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사회복지사 공부 중이다. 그리고 언제가 될런지 기약할 수 없지만 고아원을 운영하고 싶은 꿈이 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겨라’는 말처럼 고통을 삶의 교훈으로 삶은 조씨는 세상을 살리는 어머니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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