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 이태원 참사를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
■ 책 소개 / 이태원 참사를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3.10.25 16:54
  • 호수 11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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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섶 엄마가 말할게섶나무, 2023

▲책 표지
▲책 표지

20231029일은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 1주년의 날이다. 고길섶의 장편소설 엄마가 말할게는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대해 이 참사의 여러 구성 성분 간의 다양하고 유기적인 상호 작용에 대해 이야기로 풀어가며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소설의 서사성

엄마가 말할게'검찰국가'라는 괴물을 대담하게 표출하면서도 그 내재적 바탕에 깔린 문제의식은 '실존적 현실'이라는 한국사회 현실의 도도한 강물에 닿아 있다. '개돼지'의 은유를 통해, 슬픔과 기억의 차원을 넘어 우리가 역사적, 현실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선택하며 그 결과로서 우리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결정되는지, 중층적인 실존의 문제를 제기한다.

동시에 등장인물들이 갈등하는 실존적 현실은 생애사적으로 경험해온 역사적 굴곡의 삶 및 감정구조와 유관함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찬탈당할 악독한 현실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엄습했다. 그 염려가 웃프공 악몽으로 이어진 것이다. 웃프공, 웃기고도 슬프면서 공포스러운 악몽은 하나하나 현실이 되고 있다. 지독한 현실이다."(본문)

놀러 가서 죽은 사람들을 왜 국가가 책임지냐는 비난보다도 더 두려운 것은, 이 말은 차마 제가 하지 못했는데요, 딸년 굥 찍어 놓고 굥한테 잘도 죽었다고 조롱당하는 일이에요."(서영)

엄마가 말할게는 실존적 현실의 문제를 바탕에 깔면서도 꿈과 혼령들과의 대화와 동물 공화국 우화라는 복합형식을 통해 현실과 악몽, 이승과 저승, 인간사회와 동물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섬찟한 상상력과 판타지가 조우하는 상황을 전개한다.

몸집은 커다란 돼지야. 말할 때 도리도리하는 습관이 있어. 천성인가 봐. 정신분석학자 물까치라켓벌새 박사에게 들었는데, 개돼지가 도리도리하는 것은 조물주가 만든 세상의 진리와 자기네 종족이 생각하는 세상의 진리가 다를 때 나타나는 정신분열 증상이라나 뭐라나. 그 증상이 심해 표독해지면 도리도리하는 속도가 빨라져 숨도 가파라지고 말도 앞뒤 안 맞게 씨부렁 대고, 어디 그뿐인가, 몸은 발정난 돼지 꼬라지에 얼굴이 개의 얼굴로 변한다는 거야. 늑대 닮은 개 있지? 그래서 박사는 개 돼지라고 불렀어." (동물)

소설 줄거리

이태원 참사 한 유가족의 70여일간의 삼보일배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율희는 서울에 사는 공무원이면서 엄마가 있는 시골에 귀촌하여 공방을 운영할 꿈을 꾸며 준비를 해오던 중 절친 세주를 만나러 이태원에 갔다가 참사로 죽음을 당하는 20대 후반의 여성이다.

율희가 참사를 당하자 전북 부안 줄포에서 귀촌생활을 하던 외동딸 율희의 엄마 서영은 충격에 빠진 채 49재 후 줄포에서 이태원까지 삼보일배를 하기로 결심한다. 수년 전 남편마저 제설차에 치여 사망을 한 슬픔이 있어 남편과 딸 둘 다 길에서 유명을 달리 했으니 '그 사연을 길에 물어보고자' 한 것이다.

서영은 한 마을에 살고 죽은 남편과 절친이었던 혁진과 동행을 요청하여 엄동설한에 삼보일배를 시작한다. 혁진은 흔쾌히 동행을 수용한다. 남편이 자신과 술을 마신 후 귀가하던 중 사고사 당한 연유로 서영에게 죄의식이 있어서다.

그러나 혁진의 동참은 또다른 이유가 있다. 혁진은 지역 읍지()를 발간하는 일을 하는 실무 총책임자인데 고문인 지역 유지의 안하무인적 개입으로 인해 받는 고통이 극심하여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해서다.

삼보일배 일행은 서영, 혁진, 차량 운전자인 혁진의 친구 동탁, 그리고 딸이 키우던 고양이 찰스다. 동탁은 혁진의 절친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삼보일배 운전자로 동행을 하고 있지만 그는 행정안전부 최고위 관료로 출세한 고향 선배와 거래하는 밀정이다. 찰스는 율희가 키우던 고양이로 동물공화국 우화의 관찰자 역을 하게 된다.

서영은 딸이 죽은 뒤 멘붕상태였으나 70여일간의 삼보일배를 하면서 여러 계기들을 통해 이태원 참사에 대해 비로소 상세히 알게 되고 그로부터 세상에 말을 하는 것이 진실을 드러내는 일이며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서영은 삼보일배 중 뉴스를 보고 찾아 온 딸의 절친 세주를 만난다. 우연하게도 혁진의 논술 제자이기도 한 세주는 딸을 통해 이미 서영과 잘 알던 사이로 미국 유학 이후 돌아와 율희와 만난 이태원 참사 생존자다. 세주는 의식불명으로 몇 개월 동안 입원해 있었다. 세주는 서영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이태원 참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정부 최고위관료의 딸이고 그 아버지와 참사가 일어난 아침 부녀의 연을 끊었음을 고백하고, 이때 서영은 충격적인 말을 듣고 실신하는데...

미리 읽은 문학평론가 및 독자들의 평

고길섶의 소설 엄마가 말할게는 날카로운 풍자와 유쾌한 상상력으로 금세 작품 속으로 빠져든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다루면서 도 시간의 경계(과거와 현재, 현세와 영계), 생물계의 경계(인간과 동물)를 자유롭게 오가는 발랄한 상상력으로 그 아픔을 넘어, 깊은 영감으로 우리 현실을 성찰하게 한다. 개화기에 최고의 판매를 자랑한 안국선 금수회의록 현대판이라 평가해도 좋을 듯하 다. 더구나 젊은 세대의 입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각 지역의 구성진 사투리를 섞어 화자들에게 입체감을 주는 점도 돋보인다. 오랜만에 강적을 만난 느낌이 든다.

작가 소개

▲고길섶 사진
▲고길섶

고길섶은 1964년 전북 부안 출신으로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철학을 공부했으며 문화비평 및 지역문화 활동을 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문화비평과 미시정치, 어느 소수자의 사유, 소수문화들의 정치학, 부안 끝나지 않은 노래, 스물한 통의 역사진정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보다등이 있다. 엄마가 말할게는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 무언가 말을 해야겠다는 충동이 일어 작품을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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