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66) / 말고기자반
■ 박일환의 낱말여행 (66) / 말고기자반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3.10.25 19:00
  • 호수 11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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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얼굴 빛을 표현하는 말들
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인류를 피부 색깔에 따라 흔히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저 세 인종 말고 홍인종(紅人種)이라는 것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홍인종을 얼굴빛이 붉은 인종. 아메리카 인디언을 이르는 말이다.’라고 풀이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던 원주민을 가리키던 용어인데, 지금은 인종 차별에 해당하는 경멸적인 용어라 하여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 말을 욕설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우리도 예전에는 홍인종이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지금은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얼굴빛이 유난히 붉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홍인종이라 부를 수는 없고,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홍안(紅顔)이라는 한자어가 있긴 하지만 이 말은 붉은 얼굴이라는 뜻으로, 젊어서 혈색이 좋은 얼굴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비슷한 뜻을 지닌 주안(朱顔)이라는 한자어도 있지만 널리 쓰이지는 않는 말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말은 어떨까?

말고기자반: 술에 취해 얼굴이 붉게 변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낱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라 있긴 하지만 거기서는 하나의 낱말로 인정하지 않고 말고기 자반으로 띄어 쓰면서 구로 처리하고 있다. 뜻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달라서 얼굴이 붉게 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했다. 말고기로 만든 자반이 붉은빛을 띤다고 해서 만든 말일 것이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술에 취해 얼굴이 붉게 변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했지만 꼭 그런 사람만 가리키는 용법으로만 사용되지는 않았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용례로 제시한 건 현기영 소설가의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에 나오는 버썩 무안당한 김 군수는 얼굴이 말고기 자반같이 벌겋게 달아 있었다.”라는 문장이다. 예문에서 보듯이 술을 마신 얼굴빛을 나타내려 한 건 아니다.

자반은 보통 생선을 소금에 절인 것 혹은 굽거나 찐 것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하지만 콩자반이나 김자반처럼 나물이나 해산물을 이용해 만든 반찬을 뜻하기도 하고, 조금 짭짤하게 졸이거나 무쳐서 만든 반찬을 뜻하는 말로도 쓴다. 말고기자반이라는 낱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말고기로도 자반을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국어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지만 제육자반이라는 것도 있다고 하니 말고기로 만든 자반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우리 식단에는 예부터 말고기 자체가 오를 일이 드물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주도에 가면 말고기를 파는 식당이 여럿 있지만, 제주도를 제외한 곳에서는 아주 드물게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제주도와 말은 특별한 관계가 있으니 제주도에 말고기 식당이 많은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국어사전에 말고기를 뜻하는 한자어 마육(馬肉)은 있지만 건마육(乾馬肉)이라는 말은 없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의 태조실록과 태종실록에 한 차례씩 건마육이라는 말이 나온다. 둘 다 제주에서 말린 말고기를 진상하는 걸 그만두라고 했다는 내용인데, 그 당시 제주에서는 매년 섣달에 암말을 잡아서 포를 만들어 토산물로 바쳤다고 한다. 육포가 소고기로 만든 포를 가리킨다면 건마육은 말고기포라고 할 수 있겠다. 말고기를 자반뿐만 아니라 포로도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끝으로 말고기를 다 먹고 무슨 냄새 난다 한다라는 속담 하나 소개한다. 제 욕심을 채우고 나서 쓸데없는 불평을 늘어놓는 걸 비유해서 이를 때 쓰는 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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