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탯줄 달린 아기고양이를 만난 순간
■ 모시장터 / 탯줄 달린 아기고양이를 만난 순간
  • 장미화 칼럼위원
  • 승인 2023.11.02 10:45
  • 호수 117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미화 칼럼위원
장미화 칼럼위원

얼마 전 탯줄이 달린 채 집 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발견하였다. 한 손에 담길 정도로 작은 고양이는 숨을 쉬고 있었지만,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놓여진 것이 안타까워 따뜻하게 쉴 수 있도록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야생에서 태어나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있게 되었는지 몰랐기에 어미가 찾아와 보살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단 아기고양이를 그곳에 두기로 했다. 그러나 만약 아기고양이가 버려진 것이라면,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이 문제로 우리 가족은 그날 밤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작은 아이는 아기고양이가 자신에게 온 선물 같은 존재라며 집안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 놓았다. 큰 아이는 12년 동안 함께 살았던 개와의 경험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탓인지 더 좋은 조건을 갖춘 곳에 보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 놓았다. 남편은 야생의 삶에 인간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키우는 것에 반대 입장을 내 놓았다. 나의 의견은 바로 눈앞에서 고통받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떻게 모른 척 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사람이던 동물이던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기고양이를 집에 데려와 키워야 한다는 의견과 자연의 섭리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같으나 그 대처하는 사고방식은 어쩜 이리도 다른지, 그러나 이러한 일은 비단 우리 집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위 사례를 좀 더 확대해 보자면 인간의 개입을 둘러싼 환경문제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연에 개입하는 형태에 따라 보존(preservation)이냐, 보전(conservation)이냐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servation(유지)’ 앞에 ‘pre(미리)’가 붙은 보존은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자는 입장으로 그 어떤 개입도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접두사 ‘con(완전히)’이 붙은 보전은 온전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자연을 유지하려면 가꾸고 보살펴야 한다는 입장으로 어느 정도 개입을 허용한다.

보전의 한 예를 들자면, 2016년 노르웨이 하르당에르비다 국립공원에서 갑작스러운 번개로 순록 323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집단으로 사망한 순록의 사체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지역주민은 순록 사체 주변에 설치류가 들끓으면서 균이 퍼지게 되어 피해를 입을 수 있으며, 생태계가 악화되고 지역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사체를 치워줄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국립공원 측은 순록의 죽음은 벼락이라는 자연 현상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사체를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어떠한 인간의 개입도 허용하지 않고 방치하였다. 4년 후 이곳의 생태계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동식물들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연구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보존이 생태계의 건강성과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보전 또한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인간 활동으로 인해 위협을 받고 있는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고 절멸한 생물을 복원하는 것은 보전의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보존과 보전은 생태계를 유지라는 목적을 갖지만 그 방법론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방식이 더 나은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은 어떤 기준에 근거하여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자연을 대하는 관점에 따라 그 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흔히 인간중심주의, 동물중심주의, 생명중심주의, 생태중심주의로 논의되어 진다. 인간중심주의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도덕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과 구별된다는 입장이다. 인간의 편의와 이익을 우선시하는 관점으로 데카르트는 자연을 자원으로 간주하여 이용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동물중심주의는 도덕적 고려의 대상을 동물로 확대하여 동물의 복지와 권리를 주장하는 관점이다. 동물 또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착취와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피터 싱어(Peter Albert David Singer)는 주장했다. 생명중심주의는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까지 포괄하는 모든 생명체에 내재적 가치를 부여하는 관점이다. 의식의 유무나 유용성과 관계없이 모든 생명체는 고유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인간은 이들을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고 환경철학자 폴 테일러(Paul Warren Taylor)는 말했다. 생태중심주의는 무생물을 포함한 생태계 전체를 도덕적 고려의 대상으로 삼는 입장이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인식하여 자연과의 상호 관련성을 이해하고 모든 생명체가 평등한 구성원으로서의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심층 생태학의 창시자 아르네 네스(Arne Naess)는 주장했다.

자연 앞에 정답은 없다. 어느 것이 더 적절한지 판단하기 위해 그 문제를 둘러싼 구성원 또는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살피고 서로 충분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생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연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과학적 연구를 통해 자연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