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네 이름은 무엇이냐 '연극 전태일' 공연에 부쳐
■ 모시장터 / 네 이름은 무엇이냐 '연극 전태일' 공연에 부쳐
  • 김윤수 칼럼위원
  • 승인 2023.12.08 11:55
  • 호수 11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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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칼럼위원
김윤수 칼럼위원

서천 문예의전당에서 연극 전태일-네 이름은 무엇이냐의 막이 올랐다. 지난 1129일 저녁의 일이다. 연극은 영웅 전태일의 50주기인 2020<연극 전태일 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시작되었고, <함께하는 연극 전태일><나무닭움직임연구소>가 제작을 맡았다. “현란한 소비사회에서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상품이 아닌, 우리시대 공동체의 삶이 살아 숨 쉬는 연극, 미래 세대에 희망을 안겨주는 연극 전태일을 표방하고 있다. 연극은 전태일의 삶을 음악 서사극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며, 20여 곡의 노래와 생음악 연주가 함께한다.

연극은 처음부터 독립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정부 보조금이나 큰 기업의 후원에 기대지 않았다는 뜻이며, 2020년 처음 공연부터 전국 각지에 <연극 전태일 모모 시/군추진위원회>가 연달아 구성되고 서천 공연까지 순수하게 시민들의 모금으로 제작되었다. “독립제작 방식은 공동체 문화가 침체해가는 시대에 우정과 연대의 정신을 상기시켜 준다는 제작진의 말 그대로, 이번 서천 공연 포스터에도 후원 모금을 담당한 시민노동교원 단체들의 이름이 어깨동무하듯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다.

이번 연극 전태일은 그 자체로도 기념비 같은 일이지만, ‘시민들의 전액 모금으로 초청한 공연서천문예의전당 대강당을 가득 채운것도 모두 처음이고 기억되어야 할 일이다. 이렇게 큰 규모의 연극에 서천의 초등학생들이 네 명이나 특별출연한 것도 처음이며 이 연극이 함께 만들어가는 연극이라는 점을 다시 상기시켜준다.

전태일 이전까지 누군가의 부모, 형제 자매들은 이름대신 재봉사1, 2... 시다 1, 2... 로 불리며 가혹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목줄을 잡아맨 처지였다. 그러한 노동환경을 대로라도 바꿔보려 했지만, 벽에 부딪치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과 함께, 연극이 그린 것처럼, 불새처럼 산화하며 당시의 모든 전태일들과 앞으로 올 전태일들에게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 식민지와 전쟁의 야만 시대를 지나 다시 인간을 기계로 취급하는 얼굴없는 산업화의 야만으로 질주하고 있던 한국 사회의 목덜미를 잡아챈 물음이었다. 전태일은 그렇게 이름 없는 자들의 영웅이 되었고, 현재에도 되어가는 중이다. 엄숙한 기념식이 아니라 이번 연극과 같은 축제 속에서.

이번 일은 우리 사회가 영웅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에게는 동상을 만들어 높이 우러러보게 만든 영웅들이 대부분이다.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 대로변이나 회전교차로에 동상을 세운다. 바쁜 세상에서 그 영웅들의 정신을 생각하며 우러러보다가는 교통사고를 당하기 십상이다. 어떤 날은 그 영웅들의 거취가 불분명해지기도 한다. 보수(!) 공사를 하거나 육사가 입맛 다른 사람들에게 장악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외국 어느 호숫가에 서 있는 찰리 채플린의 동상처럼 (망측한 일일지는 몰라도) 껴안고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연극은 전태일이 이렇게 불편하거나 변덕에 따라 이전 가능하거나우리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는영웅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연극에 등장했던 10명의 전태일과 모든 재봉사1, 2... 시다 1, 2, 3...처럼 우리 곁에 있는 모든 형제, 자매와 부모가 사실은 전태일이기 때문이다. 그냥 껴안기만 하면 서로에게 영웅이 된다는 사실을 이 연극은 일깨워준다.

연극이 끝나고, 300여 명의 관객 중 자리를 뜬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후문이었다. 재미없는 대목이 있었을 테니 몇 사람 일어나도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뜬금없이 사랑은 그런 게 아니잖나 싶기도 했다. 하여간 연극 전태일로 올 겨울은 서천의 여러 친구들과 더욱 뜨겁게 서로를 껴안아줄 이유와 크리스마스 인사가 생겼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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