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 (73)동장군(冬將軍)
■ 박일환의 낱말여행 / (73)동장군(冬將軍)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3.12.20 23:12
  • 호수 1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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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위를 나타내는 낱말들
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라는 말도 있지만, 정작 추위를 반길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가진 것 없는 이들은 겨울 추위가 무섭기만 하다. 난방비 걱정은 물론이려니와 바깥에서 장사를 하거나 찬바람 맞으며 일해야 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은 이번 겨울이 부디 따뜻하게 지나가길 바라고 있을 게 분명하다.

겨울 추위를 뜻하는 말은 혹한(酷寒)이나 엄동설한(嚴冬雪寒)을 비롯해 꽤 많다. 그중 일상에서 많이 쓰는 말로 맹추위와 강추위가 있다. 강추위는 다시 두 가지 뜻으로 나뉘는데, 한자를 사용한 추위눈이 오고 매운바람이 부는 심한 추위를 뜻하며, 한자를 쓰지 않는 강추위는 반대로 눈도 오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으면서 몹시 매운 추위를 뜻한다. 요즘은 쓰는 이가 많지 않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몹시 심한 추위라는 뜻을 지닌 된추위라는 낱말도 올라 있다.

겨울이 되고 강한 추위가 몰려오기 시작하면 날씨를 전하는 신문 기사나 방송에서 동장군이 몰려온다는 식의 표현을 자주 쓴다. 동장군을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동장군(冬將軍): 겨울 장군이라는 뜻으로, 혹독한 겨울 추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북한의 조선어대사전에는 같은 뜻을 지닌 낱말로 엄동장군(嚴冬將軍)’을 싣기도 했다. 동장군이라는 말이 생겨난 다음에 다시 엄동설한에 빗대어 만든 말일 것이다. 북한말이라고는 하지만 남쪽 사람들도 더러 이 낱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나저나 겨울을 왜 하필 장군에 비유했으며, 이 말은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을까? 나무위키에 따르면 19481015일 자 <동아일보>동장군이라는 낱말이 처음 나온다고 하는데, 내가 찾아본 바로는 그보다 앞선 1946년에 <경향신문><조선일보> 기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상어로 쓰이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지 않은 낱말임을 알 수 있는데, 이 낱말이 일본어사전에 실려 있다. 즉 일본에서 건너온 낱말이라는 얘기다.

冬将軍: (モスクワに突入したナポレオンが、厳寒と積雪とに悩まされて敗北した史実に因む)冬の異名. 冬のきびしさを擬人化した表現.

(모스크바에 돌입한 나폴레옹이 혹한과 적설에 시달리다 패배한 사실에서 비롯된) 겨울의 다른 이름. 겨울의 혹독함을 의인화한 표현.

일본의 대표적인 사전 고지엔(広辞苑)에 나오는 풀이이며, 다른 일본어사전의 풀이도 대동소이하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한 시기는 밝히지 않았으나 1812년에 일어난 일이다. 나폴레옹이 패배한 게 오로지 추운 날씨 탓만은 아니지만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 추위가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이때 영국과 미국의 신문이 전황을 전하는 기사에 ‘General winter’, ‘General snow’, ‘General frost’ 같은 표현을 사용했고, 일본 사람들이 그걸 한자로 번역한 게 冬将軍이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이들도 있겠지만 모르고 있는 이들이 훨씬 많다. 일본어사전에서는 낱말의 유래를 자세히 밝혔는데, 우리 국어사전을 편찬하는 이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유래가 없고, 신기철신용철 형제가 편찬한 새우리말큰사전에는 유래가 나와 있다. 동장군이라는 말이 일본에서 건너왔으니 쓰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낱말이 생긴 유래만큼은 알고 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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