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대 보기 (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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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4.05.14 00:00
  • 호수 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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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이 정 아  /  그림·이효남

순간 우리들의 머릿속엔 가족, 친척들의 얼굴과 몸이 영화 필름처럼 휘리릭 지나갔는데, 아무래도 화상을 입은 흔적을 가진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 같은데요???
형이 물었습니다.
“왜? 다쳤지. 잘 보이지 않는 곳이라 니들이 모르는 것 뿐이지.??
“누가 다쳤는데요???
이번엔 내가 물었습니다.
“막내가 다쳤단다.??
“네에? 작은 아빠가요???
순간 인천에 살고 계신 작은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런게, 그날 할미하고 할아버지하고 집을 비운 날, 네 형제가 잠이 들었는디, 밤에 촛불을 갖고 장난을 쳤던가봐. 아마 그림자 놀이라도 했던 거 같지. 이 녀석들이 촛불이 꺼졌나 잘 보고 잤어야 했는디, 한 놈 두 놈 피리릭 쓰러져 잤는디, 막내가 냄새 때문에 깼다는구먼. 깨서 보니께 형들이 덮은 이불 끝이 벌겋게 타오르더라는구먼. 막내가 형들을 부를 새도 없이 지가 덮고 있던 이불을 휙 던져 발로 밟았디야. 그 바람에 잠자던 애들이 다 깨고. 놀래서 다 일어났든디, 그만 불이 막내 머리카락이 옮겨 붙어서, 놀래서 소리지르고, 다른 애들이 또 달려들어서 불을 끄고. 결국 막내 머리가 반 넘어 타고 벌겋게 화상을 입었지. 머리만 화상 입은 게 아니고 정신없어서 뜨건 줄도 몰랐는디 팔뚝에도 상처가 남았다는구먼. 여린 살이라 아프다고 우니께, 그 밤에 막내를 들쳐업고 읍내까지 달려갔다는구먼. 그땐 소독약도 없었으니께.??
“누가 업고 갔어요? 할머니???
“누군긴, 누구여? 셋이서 서로 서로 그 밤에 업고 간거지. 첫째가 업고 가다 힘들면, 둘째가 업고 그러다가 또 셋째가 업고. 시상이 읍내꺼정은 이십 리도 넘는 길인디. 어린 것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 생각혀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할머니는 그 길이 눈앞에라도 보이는 듯 슬픈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네???
나는 가는 길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할머니 이야기를 재촉했습니다.
“그 밤에 저기 도깨비가 나온다는 도깨비 고개꺼정 넘어서 셋이 읍내 의원을 찾아가서 소독을 했다는구먼. 문을 막 두드리면서 울었다는겨. 우리 동생 죽어요! 하면서. 그날만 생각하면 내 마음이 쓰리다. 아직도 막내 머리에 상처가 남아서 거기만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단다.??
그러고보니 막내 작은 아빠는 유난히 모자를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창수네한테 전화를 했고, 창수 아버지는 애들이 많이 다친 줄 알고, 병원에는 창수 엄마를 보내고 자기는 날 찾아왔던 거지. 그때 마을에 창수네만 전화가 있었는디 한밤중에 연락을 받고도 하나 싫은 내색 없이 우리 애들을 위해서 부부가 밤길을 움직였던거여. 참 고마운 사람들이지. 자식들 따라 서울로 떴는디, 잘 살고 있겄지.??
할머니 이야기와 함께 우리들의 목욕도 끝나갔습니다. 하지만 가슴속에 뭔가 무거운 덩어리가 얹혀진 느낌이었습니다.
밤길을 달리던 네 형제가 자꾸만 눈에 보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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