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모성애
■ 모시장터 / 모성애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24.01.25 09:27
  • 호수 11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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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순 칼럼위원
신웅순 칼럼위원

둘째는 우리집 옆에서 산다. 자주 엄마를 불러댄다. 그런데도 아내는 불평 한 마디 없다. 아내는 늘 스탠바이하고 있다.

엄마, 나 어디 가는데 애 좀 봐줘.”

엄마, 오늘 저녁 엄마 집에서 먹을 게.”

엄마, 나 뭐 먹고 싶어.”

등의 이유들이다. 사십이 다 되어가는 딸이다. 그래도 아내는 거절하는 법이 없다. 백프로 오케이다. 그래서 나 혼자 밥을 먹을 때가 많다. 물론 아내는 남편 먹을 것 챙겨놓고 일 보러 가긴 한다.

아내의 빈자리를 자연 채울 수밖에 없다. 만추의 바람이 부는 빈자리이다. 약간의 청소라든지 빨래를 갠다든지 등 소소한 것들이다.

아이들 시집보내고 나면 이젠 우리 둘이 즐기며 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옛날 어머니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내는 다시 그 길로 돌아간다. 손주를 돌보아주는 것이다. 여자의 모성애는 정말 장난이 아니다.

옛날엔 아이 중심으로 살았으나 지금은 모든 것이 손주가 중심이다.

손녀가 막 말을 시작했다. 얼마 전엔 명사 하나였던 것이 명사, 동사, 부사에 이르기까지 온통 한 문장을 구사한다. 신통방통하다.

부모님도 우리를 애지중지 저리 보며 키웠을 텐데. 죽을 때까지 철들지 못하는 것이 사람인 것인가. 손주까지 보고나니 아버지 어머니가 더욱 그립다.

교육대학 시절 개교 10주년 기념 문예 입상작 어머니라는 시가 있다. 반세기 동안 늘 내 가슴 속에 향수처럼 남아있었던 시이다. 찾아야지 찾아야지 했는데 오늘에야 물어물어 찾았다.

학창시절 시인이 되겠다고 요란을 떨었었던 때이다. 학보신문에 실렸던 사향과 함께 겨우 두 작품만 살아남았다. 나머지는 기록이 없어 잃어버리고 말았다. 시화전 했던 어둠은 철길 위에서 혼자서 간다로 시작되는 시도 있었는데 참으로 아쉽다. 기록해 두지 않으면 이렇게 세월과 함께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21살 때의 작품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구름이 되어 하늘을 떠돌다가
흰 저고리 온통 적시고
저녁마다
바람을 몰고 온다.

천둥 속으로
당신은
모란이 되어가고
꽃 속으로
당신은
이승을 해탈하여
전생을 흘리는 눈 가장 자리에
무한으로 타가는 마지막꽃잎이여.

먼 서녘 빈 뜰
이승을 혼자서 살아
노을을 밀어내며
어둠을 보내는
눈길
구름과 바람.

밤에는
별빛과 어둠이 꿈 속에 뒤바뀌다가
새벽녘
어머니는
부시시 모란에서 나와
구름으로 하늘에 떠오른다.

-1972년 공주교대 10주년 기념 시부문 입상작.

내게 저런 때가 있었나 싶다.

아내는 그 옛날 내 어머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눈발 날리는 겨울이다. 지극한 모성애는 혹서, 혹한에도 덮지도 춥지도 않은가보다. 어머니가 그랬고 아내가 그랬고 지금의 딸이 그렇다.

(2024.1.11. 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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