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복고택전시관 ‘혼례 마당을 빌리다’
이하복고택전시관 ‘혼례 마당을 빌리다’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4.02.01 08:28
  • 호수 11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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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과정 속 결혼식 문화 한눈에 파악

전통혼례복장 대여 사진촬영도 ‘인기’
▲60년대 마당에서 치른 혼례식
▲60년대 마당에서 치른 혼례식(예소아카이브 소장 자료)

기산면 신산리에 있는 이하복고택전시관에서는 지난 2일부터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혼례 마당을 빌리다라는 이 전시회에서는 급격하게 변한 산업화 과정 속에서 결혼식 문화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전시관에는 민속학자 노영미 박사의 논문 <혼례사진과 예식공간의 변화에 따른 혼례문화 변동>을 토대로 압축 설명을 한 글이 있어 혼례문화의 변화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1960년대까지는 전통혼례식이 보편적이었다. 신부집 마당이 결혼식장이었다. 혼인날 신랑이 신부 집에 올 때에는 집안 대표로 남성 3, 4명과 함을 진 우인 대표들이 동행했다. 첫날밤을 신부집에서 치르기도 했으나 대부분 신부가 당일에 가마나 트럭을 타고 시집으로 들어갔다.

▲나태주 시인의 혼례식. 박목월 시인 주례. 1973년 장항 미라미예식장
▲나태주 시인의 혼례식. 박목월 시인 주례. 1973년 장항 미라미예식장
(예소아카이브 소장자료이며 나태주 시인의 사용 승락을 받음)

1970년대 들어 읍·면 소재지 중심으로 신식결혼이 보편화되었다. 혼례식 장소가 교회, 성당, 학교에서 사진관으로 바뀌었다. 사진관은 예식부또는 예식원이라는 이름으로 예식업을 겸했던 것이다. 당시 서천군에 이러한 사진관예식장이 16개가 있었다.

예식시간은 평균 30여분 소요되었는데 이 가운데 사진 찍는 시간이 20여분이었다. 신랑신부, 신랑신부와 주례, 가족단체, 우인단체 사진 등 보통 4판의 사진 촬영이 있었다.

80년대 들어서며 사진관예식장에서 전문예식장으로 바뀌었다. 사진업보다는 예식업 위주로 운영되었으며 80년대 중반에 가정의례준칙이 일반음식점에서 하객음식대접 가능으로 바뀌자 예식장 주변에 대형 음식점들이 들어섰다. 예식장 사용도 50분 이상으로 늘어나 신랑신부와 양가부모 사진이 추가되었고 폐백도 예식장에서 드리게 되었다.

▲촬영세트장
▲촬영세트장

1990년대 이후 혼례식 장소는 예식, 폐백, 잔치까지 벌일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발전했다. 80년대까지는 혼례식장이 사진과 관련이 깊었으나 90년대 이후에는 피로연과 관련이 깊다. 음식도 처음에는 갈비탕이 주였으나 지금은 대부분 뷔페식이다. 혼례식 시간도 늘어나 양가 직계가족사진 촬영이 추가되었으며 피로연까지 마치면 신랑신부는 제주도나 국외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전시장에는 이러한 변화를 겪으며 오늘에 이르는 결혼식 사진 100여점이 소품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있다. 신랑신부의 전통 혼례복장을 빌려주어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나정심 학예사는 장년층의 부부도 와서 전통혼례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는 등 인기가 많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회는 장항읍 창선리에 있는 예소아카이브, 청암문화재단, 민진홍 님의 자료 협조와 '예술 곁에'의 디자인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이하복 고택에는 혼례와 관련된 유물을 여러 점 소장하고 있다. 혼례 때 쓰인 목각기러기, 사모관대, 족두리, 비녀, 목화, 초립 등이다. 이러한 유물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전시회는 1031일까지 열린다.

▲대여해주는 전통 혼례복
▲대여해주는 전통 혼례복
▲대여해주는 사모관대, 족두리, 신발
▲대여해주는 사모관대, 족두리,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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