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대 보기 (23회)
키 대 보기 (23회)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05.20 00:00
  • 호수 2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이 정 아 / 그림·이효남

 연날리기와 썰매타기, 그리고 딱지치기가 컴퓨터 게임보다 더 재미있다는 걸 조금씩 느껴가고 있을 때 엄마가 우릴 데리러 왔습니다.
낯익은 차가 골목길로 들어설 때 갑자기 가슴이 철컥 내려앉았습니다.
엄마를 보고 싶어했는데, 서울의 친구들도 궁금했는데, 이상하게도 반갑기보다는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
나는 옆집 구공 할머니댁에 마실 가신 할머니를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연세가 90세이셔서 구공 할머니라고 불리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작년까지만 해도 팔구 할머니셨지요. 동네에서 그 할머니 나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구공 할머니네집 덕구가 먼저 대답합니다. “멍멍멍 멍멍”
“할머니! 할머니! 엄마 와요!”
“이이? 뭐어? 누가 와?” 그제서야 할머니는 덕구가 물어다 마당 한켠에 던져둔 슬리퍼를 찾아 신고 우리 집 쪽으로 걸어오십니다.
“엄마가 와요. 우릴 데리러 오나봐요.”
“이잉? 아직 학교 갈라믄 멀었다고 안혔어?”
“네. 2주일이나 남았는데…….”
“얼른 명석이네 가서 형 데려와라. 얼른,”
“네.”
보이진 않지만 아마 할머니 가슴도 철컥 내려앉았을 겁니다.
그 동안 할머니는 매일 “야아, 사람 사는 것 같다. 이 할미 정말 살아있는 것 같다.”하시면서 우리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거든요.
차는 할머니네 집 바로 앞 공터에서 멈춰섰습니다.
“엄마!”
나는 운전석 문을 열고 내리는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깁니다.
“철수야!”
나를 꼭 안았다가는 얼굴을 손으로 어루만지는 엄마 눈에 눈물이 글썽거립니다.
“엄마, 보고 싶었어요.”
“엄마는 더 보고 싶었어. 형은?”
“저기 명석이 형네 놀러갔어요. 빨리 갔다 올게요.”
“그래. 엄마 왔다고 어서 오라고 해.”
“그런데, 엄마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뭐어? 일찍? 너 엄마 안 기다렸어? 엄마는 우리 철수가 엄마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줄 알고 일부러 휴가까지 내가지고 이렇게 달려왔는데.”
갑자기 엄마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감돕니다.
“에이, 엄마? 난 개학 때나 오시는 줄 알았다는 말이예요.”
“아빠는 그러자고 했는데, 엄마가 못 견디겠더라. 우리 아들들 보고 싶어서.”
엄마는 다시 한번 나를 품에 꼭 안습니다.
명석이 형네서 영수형을 데리고 들어섰을 때 집엔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다른 날보다 더 맛있는 반찬이 가득한 밥상이었지만 웬일인지 형도 나도 많이 먹지는 못했습니다. 생선 살을 발라 우리 수저에 올려 놓아주는 할머니의 손이 더 거칠고 시컴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