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안 지켜도 동료는 지킨다
시간은 안 지켜도 동료는 지킨다
  • 김봉수 기자
  • 승인 2004.07.02 00:00
  • 호수 2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월 29일 국회 본회의 취재기

“2시가 넘었는데 의원들은 안 보이네요.”(방청객)“시간이 늦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국회 경위)“국회의원들이 시간도 안 지키나요?”(방청객) ▲ 29일 본 회의에 참석한 자민련 류근찬 의원<사진=김진석 기자>
 29일 국회 본회의장

지난 6월 29일 오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대표는 극적으로 원구성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한달 넘게 개점휴업 상태의 ‘식물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비난을 아프게 의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달 간 끌어온 양당간의 원구성 협상이 마무리됐던 탓일까. 오후 2시 본회의 개회 시각에 맞춰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낸 의원은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민주당 김홍일 의원과 민주노동당 조승수, 강기갑 의원뿐이었다.

이날 본회의 안건은 국무총리(이해찬) 임명동의안과 국회의원(박창달) 체포동의안. 사진기자들이 방청석에서 하나둘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즈음, 양 당의 의원총회가 끝나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개회시각이 15분 정도 지났을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하나 둘씩 본회의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날 안건의 민감성 때문이었는지 출석률이 상당히 높았다(국무총리 임명동의안 무기명 투표에 참석한 의원은 289명이었다).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치른 이해찬 총리 지명자도 모습을 나타냈다.

장영달 의원의 심사경과 보고가 끝난 후 실시된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무기명 투표. 가 200표, 부 84표, 무효 5표. 참여정부 2기의 실세총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국회의원(박창달) 체포동의안을 처리해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때와는 본회의장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김원기 의장이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박창달 의원. 나와서 신상 발언 해주십시오.”

단 위에 올라선 박창달 의원은 “나의 체포동의안을 처리해야 하는 부담을 동료의원들에게 지우게 돼서 죄송하다”는 말로 서두를 꺼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변명을 하고 싶은 마음은 추후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변명을 하지 않겠다는 박창달 의원은 잠시 후 울먹이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통상적인 지역구 의정활동에 대한 사법부의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것이었다.

박 의원의 울먹임이 통해서였을까. 질의에 나선 한나라당의 주호영, 김재원, 박계동 의원은 차례로 박 의원의 입장을 적극 옹호하며 강금실 법무장관에게 날선 질문을 던졌다. 특히 주호영 의원은 “정당한 지역구 활동이 아니냐”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의원들의 질의가 끝나자 한나라당 의석에서는 “잘했어”라는 추임새가 터져 나왔다. 뒤질새라 김재원 의원도 나섰다.

“제가 율사 출신 의원분께 물으니 이렇게 대답합디다. 싱크대 뒤에는 바퀴벌레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싱크대 뒤에 있는 바퀴벌레를 죽이려 하지는 않는다. 다만 싱크대 밖으로 나온 바퀴벌레만 죽이는 것이다. 우리 박창달 의원은 바로 싱크대 밖으로 나온 바퀴벌레인 것이다.”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질의를 듣던 의원들 사이에서는 가벼운 웃음이 번졌다. 질의 후 곧바로 무기명 투표가 진행됐다. 투표를 마치고 개표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박창달 의원 구하기에 나섰던 김재원 의원은 개표 결과를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투표 참여 의원 286명 중 찬성 121, 반대 156, 기권 5, 무효 4. 체포동의안은 부결됐다.

의원 면책특권 및 불체포 특권 제한을 공개적으로 약속한 17대 국회. 본회의 개회 시각은 지키지 못했지만 동료의원 지키기에는 결국 성공했다.

한편 류근찬의원(충남 보령-서천·자민련)은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해 “부끄럽다”며 체포동의안 투표시 기명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류의원은 30일 여의도통신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17대 국회는 초선의원도 많고 해서 생각이 새로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면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며 더 이상 국회가 방탄국회라며 욕먹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류의원은 이어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국회 일부에서 체포동의안 투표시 기명투표로 하자는 의견이 있다”며 “이에 찬성 한다”고 밝혔다.

류의원은 그러나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에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김동현, 김봉수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