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은 영어박사 (마지막회)
내 동생은 영어박사 (마지막회)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09.24 00:00
  • 호수 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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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 정 아
“내가 뭘 못하게 하면 아이씨라고 해요. 아기가 욕해도 돼요?”
“뭐라고 했다고?”
“아이씨요.”
“가만, 가만, 아이씨라? 음, 그거 욕이 아닐 수도 있어.”
엄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눈이 빛났습니다.

“네에? 아이씨가 욕이 아니고 뭐예요? 엄만 내가 그 말 할 때마다 혼내셨잖아요.”
“잠깐만, 그러니까, 영어 일수 도 있다는 거야. 너 생각나니? 지난번 현호네서 비디오 빌려서 봤었잖아. 만화영화 말이야. 사자가 나오고.”
“아, 그거요? 그거 영어로만 나와서 앞에 조금만 보고 말았잖아요. 엄마도 답답하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너 학교 가고 엄마 설거지 할 동안 동하에게 틀어줬었거든. 그때 혼자서 잘 보더라고. 아마 그때 배운 것 같아. 아이씨란 말. 나도 언뜻 들은 것 같거든.”
“그럼 뭐예요? 동하가 영어로 욕을 한단 말이에요?”
“아니지, 영어에서 아이씨란 알겠어요란 뜻이거든. 내가 언젠가 그 말을 했었던 것도 같고, 그 영화에서도 많이 나온 것 같아.”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변해 버렸던 엄마가 예전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빨리.
엄마와 내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동하는 부엌 바닥에 밀가루를 다 쏟고 있었습니다.
동하는 하얀 밀가루를 눈처럼 뿌리고 있었습니다.
“아, 안돼! 동하야! 밀가루 그것뿐이란 말이야!”
엄마가 동하 손을 잡으며 소리쳤습니다. 그 때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대로  “아이씨”였습니다.
‘알겠어요’란 그 영어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알겠다는 녀석이 밀가루 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더 많이 움켜쥐려고 했습니다. 그리곤 입으로는 계속 “아이씨, 아이씨”라고 했습니다.
엄마 귀엔 영어로 들리는 그 말이 왜 내 귀엔 자꾸 욕으로 들리는 걸까요?
내 동생은 정말 영어 박사일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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