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웁써!” 끼로 뭉친 타고난 광대
“나이 웁써!” 끼로 뭉친 타고난 광대
  • 공금란 기자
  • 승인 2004.09.24 00:00
  • 호수 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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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춤꾼 그리고 큰 손,서림국악원 김호자 씨와 회원들
장구하나만 있으면 신명을 잃었던 노인들을 웃음과 흥의 도가니로 이끌어 가는 이가 있다. 크게 이름난 이는 아니지만 일찍이 이토록 끼로 뭉친 이를 본 일이 없었다. 이래서 어렵고 저래서 어렵고, 하여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은 오늘 이 사람에게서 배울 일이다.나이? 모른다. 나이를 물으면 “챙피시럽게 무슨 나이? 나 나이 웁써”한다. 그렇다고 남의 호적을 들춰 볼 수도 없고 나이란 게 삶의 틀을 좌우하는 게 아닐 터. 50줄은 넘었다고 하니 그냥 그렇게 알자.이름 김호자, 서림국악원 원장이다. 3년 전, 김 원장의 절대적 후원자인 남편 송정길 씨(서천여고 교사)의 도움으로 서천사거리 한 건물 지하에 둥지를 틀었다. 물론 악기며 의상, 갖가지 장비를 갖추는 데도 남편 공이 크다고 자랑이다.이곳을 찾는 이들은 참으로 각양각색. 서천초등학교 1학년 짜리 오아연 양과 그의 할머니, 또 할머니들의 친구와 아연 양의 친구들, 살림에 여유가 좀 생긴 주부들, 그리고 세상살이에 맘대로 껴들기 힘들다고 생각되는 장애인들이 서림국악원 가족들이다.기자가 찾던 17일, 한가위는 좀 멀었지만 김 원장의 급한 성격 그대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군내 독거노인과 장애인 가정에 음식을 나누는 날이란다.“명절 때 임박해서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오니께, 한꺼번에 자시것남? 긍께 우린 항상 미리 전해 드리네” 매년 추석에, 설에 음식을 나눠오고 올해도 어김없이 이 일을 하고 있다.“잼나게도 딱 아흔아홉 집이네” 사과 다섯 개, 배 다섯 개, 사탕 한 봉지 그리고 떡 한 꾸러미씩, 골고루 아흔아홉 상자를 만든다. 이 일엔 서림국악원 가족들이 달려들어 한다.“나 나갔다 올테니께 사과 한 개도 먹으면 안 되야, 모질라” 그리고는 나가려다 말고 “배는 먹어도 돼, 과일가게 주인이 일하는 사람들 먹으라고 열 개 더 주더구먼” 회원들에게 선생인 김 원장이 나가고 나자 ‘옳다구나’ 탐스런 사과를 그냥 둘리 없다.“정 모자라면 사과 덜 넣는 대신 배하나씩 더 넣고 하나만 먹어보자” 견물생심은 어쩔 수 없다.모인 이들은 한결같이 풍물이며 소리와 춤을 배우러 왔지만 김 원장의 인간성 때문에 여기저기 따라다니게 됐단다. ▲ 서림회원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나누어줄 음시을 골고루 담고 있다.
여기저기란 어디고 자신이 필요하다고 부르는 곳이면 다 찾아다니는 김호자 원장 덕에 초등학교 어린이들 앞이건 노인대학 어르신들 앞이건 신명난 우리소리와 춤을 선보이는 곳을 말한다.
군내 전통민속예술 행사인 모시문화제, 기벌포대보름제는 물론이고 돈 없는 단체나 노인 행사에 무료로 찬조 출연해주는 등 딱히 공연단체가 없는 이 고장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인근 대학의 평생교육 강사로 초빙되기도 했지만 “솔직히 돈은 되지만 그 쪽으로 신경쓰다보니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해서 접었네” 김 원장이 하고 싶은 일, 그 일은 그녀의 춤사위를 보고, 소리를 듣고 즐거워하는 이를 만나는 것이다.

“여기 저기 다니면 여비라고 쪼끔씩 주네” 조금씩 주는 여비를 따로 모아 외로운 노인, 장애인들과 기쁨을 나누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 선생님은요, 얼마나 부지런하신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렇게 일하시고 우리들 김치까지 다 담가주셔요” 주부회원의 말이다. 손이 얼마나 큰지, 혼자서 김장을 800포기씩이나 해서는 나눠주고, 평소에도 작게는 못해 장애인들이며 회원들의 몫까지 음식을 해댄다.

김 원장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신들렸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이 안 된다. 아무리 시간을 계산해 봐도 보통 부지런을 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저런 행사 공연준비, 4곳이나 되는 노인대학 강의, 또 가르치기 위해선 꾸준히 배워야 한다며 대전이고 전주로 공부도 하러 다닌다. 게다가 양로원, 경로당, 불우이웃 공동체에 무료공연까지 다니는 처지다. 이 정도면 당연히 옆에 사람들이 그녀의 살림을 챙겨야 할 터인데 오히려 밑반찬이며 음식을 장만해 나눠주고 있으니 말이다.

“좋아, 내가 좋아서 하는 겨” 김 원장이 이런 일을 하는 이유의 전부이다. 이런 열정이 문화 불모지 서천에서 할머니 무용단, 장애인 풍물패, 어린이 무용단 등을 만들어 내고 이 팀들이 판 굿을 할 수 있는 틀을 갖췄다. 그 것도 자력으로 말이다.

“내가 좋아서”라는 말은 김 원장이 장구 하나 놓고 노인들 앞에서 판을 펼치는 것을 보면 저절로 공감하게 된다. 타고난 끼, 타고난 입담, 타고난 인심, 이런 것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저절로 흥겨워 지는 요소들이다. 나이 40 넘어서 우리소리와 춤을 배우기 시작해 오늘 이만큼 성과를 보이고 있다. 하기에 김 원장을 ‘타고난 광대’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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