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 (1회)
술래잡기 (1회)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10.08 00:00
  • 호수 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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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 정 아
“5분만 더 기다리자.”
아빠는 벌써 세 번째 담배를 꺼내고 계십니다. 우리가 생각한 시간보다 기차는 20분이나 더 늦게 온다고 합니다.
저녁 해가 지는 게 아쉬운지 역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국화와 벌들에게 온 힘을 다 쏟고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 햇살이란 걸 꽃들도 아는지 덩달아 눈부시게 빛을 냅니다.
벌 두 마리가 작은 꽃 안에 서로 앉으려고 다투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은 서로 양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네가 먼저 꽃에게 가라고. 벌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냥 싸우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아빠는 담배만 피우실 뿐 말이 없으십니다.
“삐리리릭“ 기차가 오고 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우린 수원에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집도 남에게 넘어갔고 아빠 직장도 사라졌으며 무엇보다도 수원엔 이제 엄마가 없습니다.
따뜻한 보금자리가 하루아침에 썰렁하게 변해버렸습니다.
4학년에 올라온 뒤로 아빠가 하시던 중고차 사업이 어려워졌고 여기저기서 편지가 날아들었습니다. 우체부아저씨는 매일 도장을 가져오라고 한 다음 종이를 넘겨줬고 엄만 도장을 찍을 때마다 한숨을 쉬셨습니다.

저녁마다 한숨으로 시작한 말소리가 큰소리로 번졌고 엄만 목욕탕에서 숨죽여 우시곤 하셨습니다.
박물관으로 가을 소풍을 가던 날, 엄만 다른 날보다 김밥을 맛있게 더 많이 싸주셨습니다. 친구들하고도 나눠먹고 선생님께도 드리라고 했습니다. 가방 속 깊숙이 김밥을 넣고 집을 나서며 난 씩씩하게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외쳤습니다. 선생님은 맛이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습니다. 가슴이 꽉 차오는 게 정말 기분 좋은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식탁 위에 놓여 진 편지 한 장을 읽는 순간 모든 행복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엄마의 글씨였습니다. 군데군데 얼룩이 져 있는 게 아마 울면서 쓰셨나봅니다.
꼭 데리러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빤 편지를 보자마자 좍좍 찢어버리셨고, 그 길로 엄마를 찾으러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셨습니다. 엄만 정말 꼭꼭 숨어버렸습니다. 이제 그만 게임을 하고 싶다고 아빠와 내가 아무리 외쳐도 엄만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봇대 뒤에 숨었을까?’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달려가 봐도 없었고, 뒷산 산책로 빈 의자에 앉아있을지도 몰라 새벽부터 달려가 봐도 없었습니다.
아빤 게임을 끝내기로 했습니다. 아빠가 졌기 때문입니다. 나도 덩달아 졌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니, 엄마가 숨어버린 그날부터 아빠와 난 한 편이 되어있었으니까요.
우리가 엄마 찾는 게임을 끝낸 다음 날, 아빤 허름한 트럭을 타고 집에 오셨습니다.
천막이 쳐진 뒷부분엔 비닐에 싸인 가방이 산처럼 쌓여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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