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 (3회)
술래잡기 (3회)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10.22 00:00
  • 호수 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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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 정 아
깡마른 몸에 가무잡잡한 얼굴, 그리고 작은 목소리를 가진 아이여서 아직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보지는 못했습니다. 참 가엾은 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을 걸어보지 못했습니다. 그게 좀 후회가 됩니다. 그런데 문득문득 경수 이름이 내 입에서 맴돕니다. 언젠가 엄마에게 경수 이야기를 한 것도 같습니다. 엄마가 뭐라고 하셨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할머니네 집은 역에서 내려 버스를 또 타야 했습니다.
어둠이 쉽게 내려와 앉은 시골 버스 정류장은 잔뜩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도 타지 않은 버스 한대가 우리 앞에 와서 멈췄습니다.

낑낑대며 가방을 들어 올리는 우릴 운전기사 아저씨는 고개를 내밀고 바라보았습니다.
어두운 시골 길을 손님이라곤 아빠와 나, 단 둘만 태우고 흔들거리며 가는 버스는 외로워보였습니다. 운전사 아저씨도 버스도 또 우리도 모두 외로워보였습니다. 혹시라도 눈물이 나올까봐 창밖을 내다보는데 거기에 또 내가 있었습니다. 울듯 한 얼굴로 버스 유리창에 기댄 내가 또 있었습니다. 밤에 버스를 타는 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아빠 목소리가 시골 집 마당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으응? 왔냐? 시상이……. 월매나 고생이 심혔으면 얼굴이 반쪽이 됐디야?”
할머니의 축축하게 젖은 목소리 뒤로 차려진 지 오래된 밥상이 보입니다.
아직도 방 안엔 파리가 날아다니고 있고, 구석자리마다 곡식을 담은 자루들이 우뚝 서있습니다. 방 안이 조금 전 내린 버스만큼이나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빠 목소리가 가구 하나 없는 방 안에 울려 퍼집니다. 
“니가 남이냐? 죄송하긴 뭐가 죄송혀? 이 에미 아직 안 죽었다. 내 힘이 남아있는 한 상준이 키워줄 테니 너는 어서 살 궁리부터 혀라. 알었지?”
“네, 어머니……”
“그리고 상준 에미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떻게든 살려고 힘쓰고 있을거니께 너무 원망하는 맘 갖지 말고.”
“……”

좁은 방 안에 셋이 누웠습니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우릴 기다리느라 피곤하셨는지 곧 코를 골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빠와 나만 잠들지 못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며 긴 밤을 보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어느 것도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언제 데리러 올 것인지 말해 달라고 하고 싶기도 했고, 엄마가 편지라도 보낼지 모르니 가끔 우리가 살던 집에 가서 우편함을 열어보라고도 하고 싶었습니다. 할 말이 많아서 차례차례 마음속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 눈을 뜨니 양 옆자리가 텅 비어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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