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
“한국 대학도 ‘글로벌 경쟁력’ 갖춰야”
새벽을 여는 강연
“한국 대학도 ‘글로벌 경쟁력’ 갖춰야”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4.08 00:00
  • 호수 2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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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연세대 총장)

‘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0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395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3월 31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정창영 연세대 총장이 ‘글로벌시대 대학의 수월성과 한국의 국제경쟁력’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우리 지역 주민들의 교양 쌓기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 <정창영/연세대 총장>
“조셉 슘페터는 기업가의 혁신이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주창했거니와, 사회주의가 붕괴된 원인도 결국은 혁신의 부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혁신을 수행할 주체가 기업가라는 점에서 사람, 인재 혹은 인적자원이야말로 한 국가와 집단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가진 것이라고는 인적자원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이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 경쟁하려면 모름지기 일당백(一當百)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정창영 연세대 총장이 강연회 서두에서 강조한 코드는 ‘혁신’이었다. 물론 혁신을 실천할 주체는 ‘사람’이며, 사람을 키우는 것이 바로 ‘교육’이라는 게 정 총장의 주장이다. 국가의 경쟁력을 언급하면서 기업과 대학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당위성이 기업과 대학 모두에게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학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물론 대학은 ‘교육’과 ‘연구’를 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봉사’의 중요성도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예컨대 연세대는 의과대 학생들은 몽골 등 저개발 국가로 의료선교를 떠나고, 수학과와 음악과 학생들은 빈민촌이나 캠퍼스 주변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료과외를 해주거나 작은 음악회을 열어주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그러나 지식기반사회에서 대학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져야 존립할 수 있다고 강조한 피터 드러커의 지적대로, 우리 학생들을 선진국의 동년배와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각 분야의 지도자와 세계인으로 키워내는 것이 한국 대학의 가장 큰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 총장이 생각하는 지도자와 세계인의 첫 번째 조건은 예상과 달리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실력과 안목을 갖춘 지도자와 세계인이 되려면 학생들로 하여금 전공 분야에만 매몰되게 해선 안 된다. 학생들은 문·사·철(文·史·哲)이라고 해서 문학, 역사, 철학을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교양을 키우면서 음악, 미술, 체육 등의 조예까지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손탁 여사도 소설을 읽는 것은 ‘마음의 교육(education of heart)’이라고 강조했거니와, 연세대가 대학 재학 4년 동안 1백권의 고전과 명저를 의무적으로 읽게 하는 과목을 개설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교양교육 혹은 일반교육에 충실할 때 나중에 사회에 진출한 학생들이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전공교육을 강조했던 영국의 대학이 진부화의 길을 걸었던 반면 교양교육을 중시했던 하버드대와 예일대 등 미국의 대학은 끊임없는 혁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회적 여건과 경제적 상황이 급속히 변할 때일수록 기초교육이 튼튼해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정 총장이 생각하는 지도자와 세계인의 두 번째 조건은 글로벌 마인드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연세대에 2006년 봄 학기부터 ‘언더우드 국제학부’를 개설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내·외국인 비율을 절반씩으로 해서 우선 1백명의 학생을 모집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실험을 진행할 생각인데, 우선 종래의 학과 위주 교육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이다. 학과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학제간 접근을 강력하게 시도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겠다는 말이다.

둘째 외국인 교수를 채용해 영어 강의를 실시함으로써 신촌 캠퍼스를 국제화의 요람으로 키워간다는 복안도 가지고 있다. 사실 한국의 대학은 종전까지 교환학생을 외국으로 파견하는 ‘아웃바운드(Outbound)’ 방식의 국제화에만 몰두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외국인을 국내로 끌어들이는‘인바운드(Inbound)’ 방식의 국제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학의 혁신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이 정 총장의 솔직한 고백이기도 하다. 다양한 대학 내부 구성원의 반발과 저항, 교육부 당국의 과도한 규제와 통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 총장은, 일본의 게이오대학이 후지사오 캠퍼스를 신설해 개혁의 실험공간으로 삼았듯이, ‘언더우드 국제학부’를 그렇게 활용할 생각이다.

“한국 대학의 혁신과 관련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대학을 바라보는 정부의 변화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학의 기초과학 연구를 연방정부가 지원한 것이 오늘날 미국의 비교우위를 가능케 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연구하는 대학은 미국이라는 왕관에 박힌 보석’(뉴욕타임즈 1994년 2월 9일자 사설)이라는 말을 결코 흘려들어선 안 된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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