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서천인구가 적기는 적은 가보다. 이 모임을 가도 그 사람, 저 모임에 가도 그 사람인 경우가 많다. 모 단체의 아무개 사무국장은 그 속해 있는 단체 일도 버거울 법한데 ‘무슨 위원’이란 직함도 꽤 많이 달고 있다. 또 어떤 이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유력단체 회장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역시 ‘무슨 위원’이란 직함을 몇 개 갖게 된 듯하다.
이쯤 되면 그들이 만능엔터테인먼트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굳이 ‘인사는 만사’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을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는 이는 없다. 또 사업의 성패는 그 일에 ‘꼭 맞는 사람’을 찾아 쓰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고 보면 사람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이 한 분야의 지도자가 되는 듯도 하다. 부정적이긴 하지만 가령 전두환에게는 ‘3허’로 일컫는 허문도, 허화평, 허삼수가 있었다. 또 김대중 대통령에겐 박지원이란 충신이 있었다.
이들이 곁에 있었기에 정권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유비가 삼고초려를 하면서까지 제갈공명을 얻고자 했던 것도 ‘인사가 만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심의위원회’ 제도는 민주주의의 결정체로 보아야 한다. 주민이 주권을 가질 수 있는 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많은 심의위원회들이 꼭두각시 노릇만 하고 말 때가 종종 있다.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무슨 위원’이란 자리를 추천한 사람들이 곧 위원들이 심의해야할 사업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체제에서는 도무지 위원자리를 하사한 사람들이 하겠다는 사업에 대해 반기를 들 수 없다. 가능하면 위원회 선정부터 투명하게 공모를 하던가, 필요한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연명추천제를 도입하던가 해야 한다.
둘째는 어떻게 해서 위원이 되었건만 도무지 가지고 있는 직책이 많다보니 심의자료나 대상에 대해 깊이 연구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 ‘알아야 질문도 한다’는 평범한 이치를 심의위원들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아무리 권해도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자리라면 사양하는 덕을 가져야한다. 관에서 무슨 감투만 씌워주면 감지덕지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입 한번 뻥끗 못하는 벙어리 위원이 한둘이 아니라니 한심한 일이다.
하긴 할 말을 하는 사람을 공직사회에선 상당히 꺼리고 있기 때문에 서로 구미가 맞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걸음만 할 것인지 답답함을 느낀다.
혁신이 무엇인가, 개혁이 무엇인가? 혁신(革新), 개혁(改革) 살가죽을 새롭게 고친다는 말이다. 여기엔 당연히 고통이 따른다. 그 고통은 마찰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살이 쪼개지는 아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면 끊을 건 끊고 갈아 낼 건 갈아내서 새살을 돋게 해야 새 가죽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각종 심의위원을 선정하는 권한을 가진 이들에게 부탁한다. 적당히 말 잘 듣는 사람, 잘 나가는 단체의 사람이 그 일에 꼭 적합한지 따져 선정해야 할 것이다. 또 심의위원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부탁한다. 그 자리가 자신과 맞는 자리인지, 자신이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시간적 여유가 있는지, 나보다 낳은 이는 없는지 고심하기 바란다.
준다고 낼름 받고, 앉으란다고 성큼 앉았다가 일 그르치고 자신의 명예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면, 새 사람부터 찾아내고 없다면 키워내야 하는 것 또한 ‘다스림’의 기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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