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
‘봉사’라는 사전에 ‘나중’이란 없다
새벽을 여는 강연
‘봉사’라는 사전에 ‘나중’이란 없다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4.29 00:00
  • 호수 2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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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록 샘의료복지재단 총재

   
“모름지기 의사라면 ‘성공한 의사’에 만족하지 않고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봉사하는 의사’ 박세록 샘의료복지재단 총재가 강연회 서두에 청중에게 던진 화두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런 발언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1963년 서울의대를 졸업했다. 당시 동기생이 1백30명이었는데, 그 중에서 80명이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나 자신도 그 80명 중의 한 명이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회의 땅’으로 건너간 뒤 죽기 살기로 공부한 덕분에 미국 의과대 정교수까지 됐지만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편치 않았다.


달랑 ‘군의관 3년’으로 조국에 진 부채를 모두 갚았다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고, 이력서에 의사 경력 이외에는 자랑스럽게 쓸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자책과 자성은 비전과 사명의 밑거름이 된다. 실제로 박 총재는 그후 북미기독의료선교회 창설, 우리민족서로돕기미주본부 준비위원회 구성, 한민족복지재단 창설 등에 앞장섰다.


특히 1988년부터는 의료선교를 위해 방북까지 감행했다. 그리고 1997년 10월 2일 그는 평양에서 아침을 먹고, 북경에서 점심을 먹고, 서울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것은 10년 동안 활발하게 이어진 북한 의료선교의 성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왜 북한을 돕느냐고 묻곤 했는데, 최근 유엔의 요청으로 의료봉사단을 이끌고 방문했던 인도네시아를 통해 그 대답을 드리고 싶다. 우리는 그곳에서 축구장 크기의 부지로 실려온 수만 명의 부패한 시신 등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참혹한 상황을 목격했다. 그러나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30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 쓰나미 재앙은 단 6초 동안 일어났다. 그에 비해서 2∼3백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북한의 기아 재앙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진 굶주림의 결과이다. 어느 쪽이 더 심각한가? 나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박 총재는 북미기독의료선교회를 통해 ‘사랑의 의료품 나누기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마침내 평양에 제3인민병원을 개원하기에까지 이른다. 실제로는 18세이면서도 남한의 12세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북한의 아이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간절한 마음과 마음이 모여 이룬 성과였음은 물론이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박 총재는 ‘봉사의 철학’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봉사 철학 3계명’을 육성을 통해 직접 들어보면 각각 다음과 같다.

“첫째, 선한 열매를 맺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미국에서 만난 환자 부부의 아름다운 이별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의 아내에게 남편은 ‘굿바이 하니. 나는 당신이 천국으로 갈 것을 믿어. 그리고 나도 곧 그곳으로 갈게. 우리 그곳에서도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자’고 말했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의 삶이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와도 같다. 우리는 그것을 ‘죽기 위해 산다’고 달리 표현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더욱 소중하다.”


“둘째,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좋아하는 음악이 삶의 고비마다 바뀌는 것을 체험하면서 나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베토벤의 교향곡을 좋아했는데, 무서울 것이 없던 젊은 시절에 나는 ‘영웅’을 좋아했다. 그러던 것이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자 ‘바이올린 콘체르트’로, 그 여인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자 ‘전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더니 중년이 되자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좋아하게 됐다. 그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삶을 허비하고 말았구나. 이웃과 나누고 도우며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셋째, 소망의 인내와 비전을 가져야 한다. 몽골인의 뛰어난 시력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인의 평균 시력이 1.5인 반면 몽골인의 평균 시력은 2.7이다. 심지어는 7.0의 초인적 시력을 가진 몽골인도 있다고 한다. 산이나 건물 같은 장애물이 없고, 현대병인 스트레스가 없었기에 그것은 가능했을 것이다.


몽골인이 끝없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야망을 키웠듯이 우리도 나라와 민족과 인류의 미래를 멀리, 크게, 넓게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비전은 총체적이고 거시적이되 실천은 구체적이고 미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박 총재의 생각이다.


북한 정권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북한 동포를 위한 양로원, 병원, 급식소, 영양제 공장, 누룽지 공장 등을 짓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봉사는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박세록 총재. 서울의대 동기생들은 졸업 40주년 홈커밍데이를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그를 ‘가장 자랑스런 서울의대인’으로 뽑았다.


<정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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