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여는 강연
역사를 건설한 것은 자각한 ‘민중’
새벽을여는 강연
역사를 건설한 것은 자각한 ‘민중’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5.13 00:00
  • 호수 2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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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만일 누가 한국 현대사를 건설해 왔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 안병욱 숭실대 명예교수와 함께 한국의 3대 원로 철학자로 불리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강연 1400회를 기념하는 강연회 서두에 이렇게 자문(自問)했고, 잠시 후 이렇게 자답(自答)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일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를 움직여 왔을지는 모르나 역사를 건설한 사람은 못된다. 폭력과 권모술수를 남겨준 이가 바로 이승만 박사였으며, 유신헌법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한 이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만일 전두환 씨와 같은 이가 몇 사람 더 있었다면 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초등학교 교장이 매주 훈화할 내용까지 정부에서 하달하던 5공 시절을 떠올리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들이 역사를 움직여 왔거나 이끌어 왔는지는 몰라도 건설보다 파괴를 더 많이 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에서 지성인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김 명예교수는 지성인 중에서도 ‘역사를 움직인 사람’과 ‘역사를 건설한 사람’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오류를 범한 사람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유신 시절에 직접 겪었던 일이다. 당시에는 존경받거나 유명세가 있는 대학 교수일 경우에는 어김없이 지방으로 끌려 다니며 정권을 홍보하는 강연을 해야만 했다. 어느 날 나를 비롯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교수 3명이 경북 지역에 갔는데, 강연회가 끝날 무렵 한 학생이 아무도 몰래 쪽지를 전달했다. 거기에는 ‘교수님, 지성을 팔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었고, 나는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것은 나치 시절 교수와 목사가 스파이 역할을 했던 역사적 과오를 내가 되풀이하고 있다는 뼈아픈 자각이었다. 그 후 나머지 두 교수는 유정회 의원과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되었지만, 나는 끝까지 대학을 지켰다.”


과거 혹은 후진 사회일수록 역사 건설의 공과를 개인에게 돌리려는 경향이 있고, 근대와 현대 혹은 선진 사회일수록 그것을 민중에게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김 교수는 그런 분석은 정당하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래야만 독재자를 만들지도 않고, 역사의 책임을 회피하는 과오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명백한 전제가 필요하다. ‘역사적 자각이 있는 민중’은 역사를 건설할 수 있으나 ‘어리석은 군중’은 역사를 파괴할 뿐이라는 자각이 바로 그것이다. 히틀러와 히로히토의 추종자들은 역사를 파괴했으며, 문화혁명 당시 모택동 어록을 들고 광진(狂進)했던 중국의 젊은이와 레닌과 스탈린을 존경하던 소련의 젊은이들은 역사의 파괴에 동참했다. 물론 당시 그들은 히틀러와 히로히토와 모택동과 레닌과 스탈린이 역사의 건설자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자살했고, 레닌의 동상은 무너졌다. ‘역사적 자각이 없는 어리석은 군중’은 역사를 파멸로 이끌 뿐이다.”


그렇다면 누가 역사를 건설하되, 파괴하지 않는 긍정적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세 가지 인간의 전형을 각각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역사를 건설하는 사람은 역사와 사회 속에서 살면서 언제나 올바른 가치 판단을 내리며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다.
성경을 세심하게 읽어본 사람은 예수가 우리에게 얼마나 정당한 가치 판단을 내릴 것을 요청하고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심지어 예수는 ‘너희는 세상의 눈인데 눈이 보지 못하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걱정할 정도였다.

우리는 언제나 옳고 그른 것, 선과 악을 판별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둘째, 역사를 건설하는 사람은 우리가 하는 일의 사회적 의의를 살려 가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일의 의미와 결과를 사회에 남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나와 내 가정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일의 결과가 나와 가정의 범위 안에 남을 뿐이다. 언제나 직장과 이웃과 나라와 민족과 인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참다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셋째, 역사를 건설하는 사람은 모든 일의 목적을 인간에게 두는 사람이다. 인간은 역사의 주인공인 동시에 목적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목적을 인간에게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결코 역사를 파괴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기업을 하면 경제가 건강하게 살아나며, 그런 사람이 정치를 하면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그런 사람이 문화예술을 하면 정신세계가 건설적인 정도를 밟게 된다.”

‘도덕적 활력이 가득하게 넘치는 사회’. 온화한 미소가 아름다운 이 노 철학자가 꿈꾸는 세상이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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