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
10억 번다면 10년 감옥 살겠다고?
새벽을 여는 강연
10억 번다면 10년 감옥 살겠다고?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6.17 00:00
  • 호수 2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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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 부패방지위원회 위원장

   
때로는 전쟁도 필요하다. 정말? 그렇다! 예컨대 암과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패와의 전쟁도 그런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지지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역설은 이미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새 물길이 열리는 청계천의 맨 앞 글자 ‘청’(淸)은 “맑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그곳에 일부 관료들이 일으킨 부패의 “탁(濁)한” 물길이 범람하면서 복마전의 상징으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그런 사회적 현실을 인식했기 때문이었을까. 정성진 부패방지위원회 위원장도 “부패 문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연역적이고 선언적인 어법으로 강연회 서막을 열었다. 부패를 단순히 ‘윤리도덕’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국가경쟁력’과 ‘사회통합’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믿어지지 않겠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부패순기능이론’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던 것이 사실이다. ‘정직하지만 경직된 정부가 정직하지 않지만 유연한 정부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헌팅턴의 발언이 이를 가장 잘 대변해준다.

그러나 이제는 부패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부패 감소→자원 배분의 효율성 증가→대외 신인도 증가→외국인 투자 증가→수출입 증가→국민소득 향상의 연속적 흐름을 현실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성숙된 것이다. 실제로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발표하는 부패지수(CPI) 단위 1에 따라 국민 1인당 GDP가 2.64% 상승하고 해외투자가 0.2%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와 있다.”


부패를 의미하는 영어 ‘corruption’은 라틴어 ‘cor’(함께)와 ‘rupt’(파멸하다)의 합성어라고 한다. 한자 ‘腐敗’도 ‘썩을 부’와 ‘무너질 패’를 합친 것인데, ‘썩어 문드러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전 영국 총리 글래드스톤은 “부패는 국가를 몰락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라고 규정했다. 부패 문제는 ‘국민윤리’ 시간만이 아니라 ‘경영학’과 ‘행정학’ 시간에도 가르쳐야 할 중요한 주제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부패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를 경제학적 개념으로 설명하면, 부패 행위를 통하여 얻게 되는 예상수익(뇌물 규모, 제도상 허점 등)이 적발이나 처벌에 따르는 비용(적발이나 처벌될 확률, 처벌 강도 등)보다 크다고 판단될 때 부패 욕구가 강해진다. 따라서 기대수익(benefit)을 최소화하고 비용(cost)을 최대화하는 것이 반부패 정책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온정주의나 연고주의 등 사회문화적 측면, 과거의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시스템 등 구조적·제도적 측면도 연구 대상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경세유표>에서 강조한 ‘예주법종’(禮主法從) 사상도 그런 점에서 면밀히 따져볼 필요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이 ‘부패균형점이론’이다. 이는 일정 유형의 부패 형성에 대하여 사회 구성원 사이에 합의가 형성된 상태를 말한다. 암표나 촌지가 대표적 사례에 속하는데, 물론 선진국이 되려면 부패균형점이 낮아져야 한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각종 지표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우리나라 청소년의 도덕적 불감증이다. 반부패국민연대가 2002년 12월 청소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적이 있는데, 그 결과가 매우 충격적이었다.

주요 내용만 소개하면, ‘보는 사람이 없으면 법을 지킬 필요 없다’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뇌물 제공을 하겠다’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변한 청소년의 비율이 각각 47.3%와 27.3%나 되었다. 특히 나는 ‘감옥에서 10년 살아도 10억을 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는 물음에 16.8%가 ‘그렇다’고 답변한 사실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한국은 국제투명성기구가 2004년 발표한 부패지수 순위에서 1백46개국 중 47위를 차지했다. 이는 아시아의 싱가폴(5위), 홍콩(16위), 일본(24위), 대만(35위), 말레이시아(39위) 등에도 크게 뒤진 것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이러한 지표가 바로 청소년의 도덕적 불감증이라는 독버섯을 배양한 숙주로 작용했다는 게 정 위원장의 생각이다.


“부패방지위원회는 이러한 문제에 총체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02년 대통령 직속의 독립 위원회로 출범했다. 물론 현재는 조사권과 수사권이 없기에 ‘무기도 없이’ 부패와의 전쟁에 나선 셈이긴 하지만 제한적으로나마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강동석 전 건교부장관과 이상경 전 헌법재판관이 최근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버티다가 결국 사직한 것은 공교롭게도 부방위에 조사 요청 신고가 접수된 직후였다.


앞으로 홍콩의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 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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