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
“서울대 따라가면 모두 다 죽는다”
새벽을 여는 강연
“서울대 따라가면 모두 다 죽는다”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6.24 00:00
  • 호수 27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호군 인천대학교 총장

   
“인천은 지난 1백20년 동안 두 번이나 개항을 경험한 도시다. 1883년에는 ‘바다’를 통해서 개항했고, 2001년에는 ‘하늘’을 통해서 개항했다. 인천이라는 도시의 이름 뒤에 붙은 ‘항’(港)과 ‘공항’(空港)은 인천의 전통과 비전을 상징한다.”


박호군 인천대학교 총장은 인구 2백60만을 보유한 제3의 광역시 인천에 대한 소개로 강연회 서막을 열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과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했던 전형적 테크노크라트인 박 총장에 따르면, 인천은 ‘개척과 개방의 도시’이기도 하다.


“인천이 개항한 이래 한국에 최초로 생겨난 기구, 시설, 공간이 많다. 우선 올해로 1백1년의 역사를 갖게 된 기상대가 제일 먼저 설치된 곳이 바로 인천의 자유공원이다. 현대식 우체국이 가장 먼저 선보인 곳도,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출발한 지점도 인천이었음은 물론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차이나타운이 상징하듯 외국인 생활공간이 가장 먼저 설치된 곳도 인천이었다. 향토사학자들의 고증에 따르면 인천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이 약 1백 가지나 된다고 한다. 이것은 인천이 개척의 도시, 변혁의 도시, 개방의 도시, 문명의 도시임을 보여주는 징표들이다.”


물론 인천이 한 동안 침체와 쇄락의 시기를 거쳤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01년 인천공항의 개설을 계기로 송도신도시가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 박 총장의 분석이다.


그는 이런 절호의 기회를 맞은 상황에서 ‘지역에 기반을 둔 대학’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대학 중에서 서울대를 빼고 확실하게 차별화된 자신만의 특성을 내세울 수 있는 대학을 거론해 보라면 얼마나 꼽을 수 있을까. 아마도 포항공대나 카이스트 등 소수의 몇 개 대학을 제외한다면 더 이상 꼽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국내의 거의 모든 대학이 매머드형인 서울대를 무조건 닮기 위해 발버둥쳐 왔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강원도에 있는 대학이라면 천혜의 청정한 자연 환경을 적극 활용해야 마땅했지만, 우리나라 대학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 있는 대학마저 정작 그 지역 발전에 크게 기여하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지역에 기반을 둔 대학이라면 모름지기 철저한 차별화를 통해서 특성화를 추구해야만 21세기 국제경쟁의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박 총장의 생각이다. 몸집이 작으면 민첩하게 행동하고 변화할 수 있지만 서울대처럼 몸집이 크면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규모는 작지만 탁월한 기동력을 가지고 세계를 제패했던 징기스칸의 기마병으로부터 한국의 지방 대학이 배워야 할 것은 너무나 많다고 그는 주장한다.


“징기스칸의 군대에는 식량을 보급하는 부대가 따로 없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병사들은 가축의 육포를 떠서 말린 뒤 가벼운 가루로 만들어 말의 방광으로 만든 자루에 집어넣고 다녔다. 더욱이 병사 한 명마다 말을 4필이나 보유하고 있었기에 말을 갈아타면서 신속하게 진격할 수 있었다.

반면에 당시 유럽의 기사들은 엄청나게 무거운 투구와 갑옷으로 자신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말까지 각종 장신구로 중무장시켰다.


‘작지만 강한’ 징기스칸의 군대는 ‘장대하지만 무거운’ 유럽의 기사보다 기동력이라는 측면에서 최소한 5배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마침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징기스칸은 이미 1천년 전에 ‘열린경영 네트워크’를 실천한 셈이라고나 할까. 지역에 기반을 둔 작지만 강한 세계적인 대학 만들기, 박 총장이 추구하는 지향점이다. 그리고 그런 대학을 만들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그 대학이 위치한 지역의 강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지금도 인천과 중국 사이에는 하루에 한번씩 여객선이 왕래한다. 저녁에 인천에서 배를 타면 그 다음날 새벽에 중국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일을 본 뒤 저녁에 다시 배를 타면 다음날 새벽에 인천에 도착한다. 현재까지는 한국을 드나드는 중국인의 절대 다수가 비행기보다 선박을 선호하고 있으며, 그 여파로 인천의 차이나타운도 부활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중국의 언어와 문화는 물론이고 무역과 통상에 능통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동북아 중심 국가론’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인천에 기반을 둔 대학을 ‘중국학의 중심지’로 키워야 할 것이다.”


아울러 박 총장은 송도경제자유구역을 ‘교육개방의 실험장’으로 만들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매년 한국 유학생 35만명이 외국에 나가서 6조원을 쓰는 것을 막고, 그 에너지를 국내로 끌어들이자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그러나 ‘시장논리’를 그렇게 강조하던 박 총장은 잠시 후 ‘인천대 국립화’를 주장함으로써 일부 청중으로부터 모순(矛盾)의 언변이라는 질책을 받아야 했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