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난한 오리형’을 경계하라
‘무난한 오리형’을 경계하라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7.08 00:00
  • 호수 2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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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재 교보생명보험 회장
새벽을 여는 강연

“내가 어느 쪽으로 가야 좋을까요?”

“그건 네 마음에 달렸지.”

“아무 곳이라도 좋으니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세요.”

“그럼 아무 곳으로나 가려무나.”

“어느 곳으로 가든지 도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꾸만 걸어가면 틀림없이 네가 도착하고 싶은 곳에 가서 닿겠지.”


서울대 의과대 교수,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과장, ‘기타 치는 CEO’ 등의 독특한 전력과 애칭의 소유자인 신창재 교보생명보험(주) 회장이 강연 중에 소개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작고한 부친 신용호 창업자의 뒤를 이어 2000년 5월 취임한 신 회장이 앨리스가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면서 만난 체이셔 고양이와 나눴던 대화 내용을 소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교보생명은 2000년부터 경영혁신에 돌입했다. 경영혁신의 어려움은 당장 긍정적 변화나 성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도리어 한동안 침체를 면치 못할 수도 있는데, 경영혁신에는 3가지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첫째 조직 변화에 따른 직무의 불안, 둘째 비용을 줄이면서도 성과는 더 많이 내야 하는 이중적 고민, 셋째 새 역할에 맞는 새로운 역량의 개발이 바로 그것이다.


반면에 경영혁신 실천의 3가지 원리도 있는데, 나는 그것을 ‘나부터, 쉬운 것부터, 윗사람부터’로 단순하게 정리했다.


모든 사람이 변화의 주체이자 대상이라는 점에서 체이셔 고양이가 던진 ‘그건 네 마음에 달렸지’라는 말은 시사적이다.”


신창재 회장은 취임 이후 교보생명의 ‘겉과 속’을 송두리째 바꿔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는 기존의 ‘몸집 키우기’ 방식을 중지시키고 ‘내실 키우기’에 집중해 왔다.


25명이나 되던 등기임원을 대폭 줄여 8명으로 이사회를 구성한 것은 물론이고 약 5만5천명에 이르던 설계사를 1만5천명 수준까지 축소하는 등 구조조정에 착수하며 경영혁신에 돌입한 것이다.

 

“경영혁신을 추진하다 보면 내부의 저항과 혼란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세계적인 초우량 기업도 혁신 성공률은 30∼40%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경영혁신을 추진해온 것은, 그것을 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회사가 망하는 길로 갈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신을 무조건 기존의 판만 갈아엎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혁신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효율과 성과가 높은 조직과 회사를 만드는 데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수술이 잘 됐다고 해도 환자가 죽어 버리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교보생명의 경영혁신은 다음과 같이 각 분야에서 변화를 추구해온 것으로 집약된다. △경영체제(경영자 1인 지시 중심에서 비전과 전략과 시스템 중심으로) △사업전략(매출/공급자 중심에서 순이익/고객 중심으로) △조직문화(관료주의/연공서열 중심에서 자율적 목표/성과와 역량 중심으로) △성공의 열쇠(설계사 인원수 중심에서 브랜드/코스트/상품개발/리스크관리 중심으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행에서 최종 행선지가 중요하듯이 경영혁신에 있어서도 비전과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전과 목표가 없으면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이러한 비전과 목표의 핵심 가치가 CEO나 기획실장 머리 속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 전체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조직이 크면 클수록 핵심 가치 공유는 더욱 중요하다. 한시가 급박한 전쟁터에서 소총수가 자율적 판단에 입각해 싸우기보다 후방의 지휘부를 돌아보며 지시를 기다린다면 백전백패 할 수밖에 없다. 의사소통의 낭비와 지연을 막고 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지게 하려면 핵심 가치 공유가 필수적이다.”


신창재 회장은 이 대목에서 드라마 ‘상도’의 몇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여주었다.

“우리는 친절과 의리와 신용이 생명이야. 이를 지키지 못하면 만상의 자격을 잃고 파문을 당하게 될 거야”(만상 말단 직원의 대화) “뒷돈(뇌물)을 주면 한몫 챙길 수 있겠지만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네. 그것이 내가 평생 지켜온 고집이 아닌가”(송상 객주의 발언) 등이 핵심 가치 공유의 사례로 제시됐고, 청중은 공감을 표시했다.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하고, 그 높아진 성과를 철저히 관리할 때 지속 가능한 성장이 보장된다. 아울러 각 구성원의 개성을 섬세하게 살펴서 팀워크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잠깐이나마 날 수도 있고, 느리지만 달릴 수도 있고, 약하지만 수영도 할 수 있는 ‘무난한 오리형’ 인재가 아니라, 하늘과 땅과 물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독수리와 치타와 물개형’ 인재를 이 시대는 요구한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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