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경영은 선택 아닌 “생존의 조건”
윤리경영은 선택 아닌 “생존의 조건”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7.15 00:00
  • 호수 27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벽을 여는 강연
한준호 한국전력공사 사장

   
한국 최초의 전등(電燈)이 점화된 곳은 경복궁 건천궁이다. 1887년 3월의 어느 날 바로 이곳에서 점등식을 지켜보던 고종과 신하들은 마침내 16촉광의 전등에 불이 들어오자 탄성을 질렀다.


한국전력공사(한전) 자료에 따르면, 16촉광 전등 7백50개를 밝힐 수 있었던 당시 전력 시설은 동양에서 가장 훌륭하고 선진적인 수준이었다고 한다.


세계 최대 기업인 GE의 원조(元祖)이자 ‘발명왕’인 에디슨이 동양에서 자사 제품 판촉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공을 들여 시공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 전등 시설은 지속적으로 이용되지는 못했다. 외국인 전등 교사 이외에는 발전과 보수를 할 수 있는 조선인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조선 정부가 새로운 외국인 전등 교사를 고용하면서 ‘전등 교사가 조선인 전등 학도를 착실히 지도하지 않으면 해고한다’라는 이색적인 계약 조건을 달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118년이 흘렀고, 조선의 후신인 한국은 단일기업 기준 국내 최대 규모이자 순이익 기준 세계 37위 기업인 전력회사를 보유하게 됐다.


실제로 한전의 외형적 성장을 보여주는 지표는 수없이 많다. 자산 규모 58조9천억원(단일기업 국내 최대, 세계 500대 기업 중 175위), 시가 총액 165억 달러(국내 2위, 세계 366위), 매출액 23조6천억원(국내 4위, 세계 265위), 순이익 2조9천억원(국내 3위, 세계 37위), 미 포브스지 선정 글로벌2000 기업 중 172위 등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공룡기업’으로 불리기도 하는 한전이 처한 에너지 산업의 환경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알다시피 ‘공룡’은 주변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해 지구상에서 멸종된 동물이다.


“세계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간 자원전쟁의 양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우선 석유의 57%가 매장되어 있는 중동지역의 정정은 여전히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이른바 BRICs 국가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에너지 수요도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긋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작년에만 5회의 해외방문을 기록했는데, 이와 관련해 한국 언론이 놓친 게 있다.


5회의 해외방문 모두가 에너지 확보를 위한 피눈물나는 외교, 즉 ‘전략적 정상 자원 외교’였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전과 달리 산자부장관이 항상 대통령을 수행한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던 중국 경제가 잠시 주춤하고 있는 이유도 사실은 에너지 부족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한국이 처한 에너지 위기의 징후를 보여주는 지표 역시 수없이 많다. 에너지 소비 세계 10위(전력 소비 OECD 국가 중 8위), 에너지 해외 의존도 96.9%, 원유 수입 세계 3위(원유 중동 의존도 79.5%) 등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에너지 수요도 향후 10년 동안 연평균 2∼3%씩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잃으면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 원리에 속한다.

“나는 동력자원부와 상공자원부에서 자원개발국장과 석유가스국장 등의 직책을 맡는 등 약 20년 동안 에너지 분야에서 일해 왔다. 당시에는 한국이 원유 수입 세계 7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것이 10년 만에 3위로 뛰어오른 것이다.


더욱이 한국은 전력 계통이 고립되어 있다는 근본적 약점이 있다. 동, 서, 남쪽 3면은 바다로, 북쪽은 휴전선으로 막혀 있다. 에너지가 부족해질 경우 인접국에서 융통해 쓰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과 소비하는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어 경제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이다.” 혁신은 위기의 각성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난 3월 16일 개성공단에 송전을 개시한 것도 남북교류의 새로운 지평의 확장인 동시에 전력 계통의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한편 한전은 한준호 사장이 부임하면서 변화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전의 혁신 방향은 경영혁신, 사회공헌, 윤리경영 등 크게 3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특히 윤리경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라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이러한 신념에 따라 사회봉사단을 조직해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일에 나섰고, 전자공학과의 위세에 밀려 위축돼 있던 전기공학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그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수 년째 최하위였던 부패방지위원회 부패지수 공기업 청렴도 부문에서 한전이 4위로 뛰어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사실 자산 규모가 크다 보니 한전을 ‘공룡’이니 ‘복마전’이니 하며 냉소적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런 왜곡된 인식을 깨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전이 국민기업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정지환 여의도통신 대표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