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도 나라살림 ‘결산’ 대충대충
17대 국회도 나라살림 ‘결산’ 대충대충
  • 김봉수 기자
  • 승인 2005.08.19 00:00
  • 호수 2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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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조원 사용내역 심사에 불과 3~4일 투자

3권 분립의 한 축으로 대(對) 행정부 견제와 감시 역할을 맡고 있는 국회가 정작 나라 살림의 결산은 대충 대충하고 있어 관련 법 개정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수십조 쓴 결산, 단 몇 시간 만에 뚝딱 = 지난 2004년 정부 예산은 일반회계를 기준으로 117조 5천억원이었다.


거기에 기금 등 특별회계의 237조원을 합치면 지난해 행정부의 각 부처가 쓴 돈은 약 350조원이 넘으며, 각 부처별로 봐도 수십조 원이 넘는다.


하지만 국회가 이렇게 큰 규모의 정부 각 부처의 예산 사용내역, 즉 결산안을 심사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쓰는 회의 시간은 단 며칠에 불과하다.


예컨대 서천 출신 류근찬 의원이 소속돼 있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는 담당 부처의 결산을 위해 16일부터 19일까지 겨우 나흘간 회의를 열 예정이다.


더구나 류 의원은 이 나흘 동안 총 2조5천억원(예산 18,719억원, 기금은 6,408억원)을 사용하는 과학기술부와 약 6조원을 사용하는 정보통신부, 기타 기상청 등 산하기관 등을 합쳐 수십조원이 넘는 결산안을 심사해야 한다.


그야 말로 결산심의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 의원들 의욕 없고 엉뚱한 질의만 = 지난 16일 행정자치위 회의 결산 자리. 행자위는 이날 하루 동안 담당 부처 중 행자부의 결산안을 심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회의는 시종일관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성 질의나 출신 부처를 ‘배려’하기 위한 질의로 흘렀다.


한 의원은 ‘결산’과 전혀 관련 없이 지역구 아파트 건설 문제에 대한 행자부의 ‘성의’있는 자세를 요구했고, 경찰 출신인 또 다른 한 의원은 ‘경찰 정원 증원’을 요구하느라 질의 시간의 대부분을 사용했다.


또 지난 17일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결산 회의 자리는 애초 정보통신부의 결산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선 휴대폰 도청 가능 논란과 관련된 현안 질의가 넘쳐 꼼꼼한 결산 심사가 이뤄지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이렇게 17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정치 공세성, 지역구 민원성 질의가 ‘나라 살림’의 꼼꼼한 결산 심사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 원인과 대책은? = 이렇게 나라 살림의 ‘가계부’인 결산안 심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우선 국회의원들의 무관심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앞으로 쓸 돈’인 예산안 심의에선 지역구에 생색낼 수 있는 예산을 더 따내기 위해 의원들이 앞다퉈 노력하지만, ‘이미 쓴 돈’인 결산안 심의에 대해선 굳이 신경을 써 잘잘못을 가려낼 필요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또 정부부처의 결산안이 국회에 늦게 제출돼 심사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2003년 개정된 국회법에는 정부가 결산안을 5월 말까지 제출하도록 돼 있지만, 현재 예산회계법상엔 정부는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9월 2일까지만 결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된다.


그러면 국회는 이를 겨우 2달 만인 11월 2일까지 처리해야 한다. 그나마 국정감사 기간을 제외하고, 또 10월 초에 내년도 예산안이 제출돼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감안하면 결산안을 꼼꼼히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는 셈이다.


여야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정부가 결산안을 제출하는 시기를 5월말로 앞당기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각각 제출했지만, 현재 여야 간 의견 차이로 상임위 상정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해 국회 관계자는 “의원들이 ‘쓸 돈’ 못지않게 ‘쓴 돈’에 대한 감시도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며 “의원과 보좌관들이 회계에 대한 전문성을 좀 더 갖춰야 하며, 관련된 각종 법 제도적 개선도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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