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은 음력으로 7월 7일이 되는 칠월칠석날이었다. 칠월칠석은 고구려 때부터 내려오는 명절이라도 한다.

칠석날이라고도
부르는 이날은 옥황상제의 벌을 받은 견우(牽牛)와 직녀(織女) 두 남녀가 하늘의 은하수를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가
이날 하루만은 까치와 까마귀가 날개를 펼쳐 놓은 오작교(烏鵲橋)를 건너 서로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
만남과
헤어짐이 아쉬운 남녀는 눈물을 흘리게 돼 이날 저녁에 내리는 비를 견우와 직녀가 해후하는 눈물, 이튿날 오는 비를
이별의 눈물이라고 한다.
조상들은
이날을 명절로 삼아 왔다. 궁중에서는 잔치를 벌이고 유생들에게 과거를 베풀었다. 민간에서는 1년 농사일을 대강
끝내는 시점에 열리는 명절이어서 말하자면 농부들의 여름휴가이었던 셈이다.
이날을 다른
말로는 ‘세서절(洗鋤節)’이라고도 하는데 ‘호미를 씻는 날’이라는 의미이다. 이날만큼은 농사일에 지친 머슴과
하인들도 휴식을 가질 수 있었던 날이기도 했다.
지난 11일 화양면 금당 북리 마을 잔칫날에도 장대같은 비가 쏟아졌다. 이날 금당 북리 마을 사람들은 마을주민들의 숙원이던
농막을 완성하고는 이를 자축하는 마을 잔치를 열었다.
굵은 장대비
속에서도 마을사람들은 국을 끓이고 지짐을 붙이고 잔치준비에 한창이었다.
화양면 군의원님이며
면직원분들도 손님으로 초대됐다.
새로 지은
농막 안에서 주고받는 노인들의 한담은 농막 짓는 것에서 잔치준비에 이르기까지 수고한 마을 젊은이들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북리 ·
하리를 합친 금당리는 화양면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한 때는 북리도 줄잡아 80여호를 헤아리는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38세대 112명의 주민들이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다고 북리이장 김종수(59)씨는 전했다.
이 마을도 이
땅 대부분의 농촌이 그렇듯이 주민 대부분이 농사일이 버겁기만 한 노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도
남아있는 젊은이들이 마을 잔치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이 마을 청년회(회장 문완식) 회원들과
부녀회(회장 윤일자) 회원들이 바로 그들. 청년이라고는 하나 어느새 40대 후반으로 접어든 세대가 막내란다.
조면하(75) 노인회장은 칠월칠석이면 마을주민들이 잠시 일을 놓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풍장을 치며 잔치를 벌였다고 이제는 없어져
버린 옛 풍습을 회고했다. 그 때는 이 일을 ‘두레를 먹는다’는 말로 표현했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만나는 단순한 천체현상을 ‘견우’와 ‘직녀’의 사랑이라는 설화를 만들어 내 6일 저녁부터 7월
보름인 백중날까지를 명절로 삼고 이를 지켜왔다.
이런 전래의
명절이 파괴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에 의해서였다. 일제는 식민지 민중들의 단합이 두려워 재래의 모든 행사들을 전면
금지시켰던 것이다.
이후 박정희
개발독재는 미신이라는 누명을 씌워 그나마 남아 있던 재래의 풍습까지 농촌에서 전부 퇴출시켜 버렸다.
그러나 이런
비이성적이고 몰 전통적인 권력도 이제는 자취를 감췄지만 이젠 풍장마저 제대로 들고 치기에도 힘이 부친 늙은 농부들만 이 땅 농촌을 지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북리
마을 주민들은 옛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록 풍장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칠월칠석을 맞아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복을 서로 빌어주는 조그만
잔치를 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둘러 본 금당리 앞들의 벼는 어느새 한 뼘이나 더 커진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