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총사 (20)
삼총사 (20)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11.11 00:00
  • 호수 2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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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니 환한 빛이 방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으, 지각이다.’

머리맡에 시계를 보니 벌써8시 30 가리키고 있다.

바람 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다가 늦게 잠든 게 원인이었다.

세수는 하지 않고 이만 닦았다. 준비물도 몇 가지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런 걸 살 돈도 시간도 없다. 어제 가져왔다 구석에 처박아둔 가방을 다시 손에 들고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웃음이 나왔다. 행복했다.

8 20까지 오지 않으면 이름이 적히고, 그러면 남아서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지만 그런 건 뭐, 집에서도 자주 하니까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고.

오후에 집에 돌아가면 아빠와 할머니가 와 계실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가족이 모두 모이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나온다. 뱃속에선 아무것도 넣어주지 않았다고 꼬르륵으로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만, 신발은 또 구겨 신었다면서 찍찍 쥐울음 소리를 내고 있지만 입만은 웃고 있었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아서 복도에 잠깐 나가서 서있었고, 지각을 해서 화장실 청소도 했다.

그 대신 점심시간에 급식실 아줌마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맛있게 먹는다면서, 친구들이 남긴 것까지.

아이들이 서둘러 학원 차를 타러 떠나고 교실이 텅 비어갈 때까지 그냥 앉아있었다. 내가 집에 갔을 때 할머니와 아빠가 먼저 와 계셨으면 해서이다.

오늘만큼은 환영을 받으며 들어서고 싶다. 혼자 무서운 하룻밤을 보낸 선물로 말이다.

해가 교실 칠판을 비추다가 선생님 자리로 옮겨갔다. 그러다가 다시 창틀에 간신히 매달려있을 때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군가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섰다.

김주원, 아직 안 갔니?”

뜻밖에도 선생님이었다.

“네.”

“왜? 아직 안 갔어? 아이들은 끝나기가 무섭게 나가는데.”

“그냥요, 집에 갔을 때 아무도 없을 까봐요.”

“혼자 있는 게 싫구나.”

“네.”


“잘됐다. 선생님이 일주일 뒤에 있는 백일장 대회에 널 내보내려고 하거든, 지난번에 일기 검사할 때 보니까 주원이 글이 아주 좋더라구. 그래서 말인데 네가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다. 주원이는 글은 잘 쓰는데 독서를 너무 안 하는 것 같아서. 선생님이 책 몇 권 줄 테니까 오늘부터 가서 읽어라. 그리고 내일부터는 방과 후에 남아서 선생님이랑 글 쓰는 연습도 하자.”

“네에?”

난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 싫어?”

“아, 아니요. 그게 아니고 너무 좋아서요.”


“녀석도, 깜짝 놀랐잖아. 싫어하는 줄 알고.”

“아니예요, 오늘 할머니가 서울에서 오시는데 제가 글쓰기 대회에 나간다고 하면 정말 좋아하실 거예요.”

“그럼, 이 책 두 권 먼저 읽어 와라.”

선생님이 주신 책은 루이브라이라는 위인전과 몽실언니라는 동화책이었다.

난 두 책을 가슴에 꼭 안았다.

정말 오늘은 행운의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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