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환한
빛이 방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으, 지각이다.’
머리맡에 시계를 보니
벌써
바람 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다가 늦게 잠든 게 원인이었다.
세수는 하지
않고 이만 닦았다. 준비물도 몇 가지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런 걸 살 돈도 시간도 없다. 어제 가져왔다 구석에 처박아둔 가방을 다시 손에 들고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웃음이 나왔다. 행복했다.
오후에 집에 돌아가면
아빠와 할머니가 와 계실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가족이
모두 모이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나온다. 뱃속에선 아무것도 넣어주지 않았다고 꼬르륵으로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만, 신발은 또 구겨 신었다면서 찍찍 쥐울음 소리를 내고 있지만 입만은 웃고 있었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아서 복도에 잠깐 나가서 서있었고, 지각을 해서 화장실 청소도 했다.
그 대신 점심시간에
급식실 아줌마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맛있게 먹는다면서,
친구들이 남긴 것까지.
아이들이 서둘러
학원 차를 타러 떠나고 교실이 텅 비어갈 때까지 그냥 앉아있었다. 내가 집에 갔을 때 할머니와 아빠가
먼저 와 계셨으면 해서이다.
오늘만큼은 환영을
받으며 들어서고 싶다. 혼자 무서운 하룻밤을 보낸 선물로 말이다.
해가 교실 칠판을
비추다가 선생님 자리로 옮겨갔다. 그러다가 다시 창틀에 간신히 매달려있을 때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군가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섰다.
“
뜻밖에도
선생님이었다.
“네.”
“왜? 아직 안 갔어? 아이들은 끝나기가 무섭게 나가는데.”
“그냥요, 집에 갔을 때 아무도 없을 까봐요.”
“혼자 있는 게
싫구나.”
“네.”
“잘됐다. 선생님이 일주일 뒤에 있는 백일장 대회에 널 내보내려고 하거든,
지난번에 일기 검사할 때 보니까 주원이 글이 아주 좋더라구. 그래서 말인데 네가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다. 주원이는 글은 잘 쓰는데 독서를 너무 안 하는 것 같아서. 선생님이 책 몇 권 줄 테니까 오늘부터 가서 읽어라. 그리고
내일부터는 방과 후에 남아서 선생님이랑 글 쓰는 연습도 하자.”
“네에?”
난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 싫어?”
“아, 아니요. 그게 아니고 너무 좋아서요.”
“녀석도, 깜짝 놀랐잖아. 싫어하는 줄 알고.”
“아니예요, 오늘 할머니가 서울에서 오시는데 제가 글쓰기 대회에 나간다고 하면 정말 좋아하실 거예요.”
“그럼, 이 책 두 권 먼저 읽어 와라.”
선생님이 주신 책은
루이브라이라는 위인전과 몽실언니라는 동화책이었다.
난 두 책을 가슴에 꼭
안았다.
정말 오늘은 행운의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