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발자국
하얀 발자국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6.01.13 00:00
  • 호수 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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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문화원 문예백일장 <산문 : 장원>
문아람 / 서천여자정보고 2학년
어둠이 비틀거리며 소복히 쌓인 눈 위로 스며들었다. 지나칠 정도로 고요한 허공으로 가끔가다 불어오는 차디찬 바람만이 그 주의를 살짝 흐트러놓을 뿐이었다. 토~옥. 이때, 나즈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몇 번인가 반복될 즈음 키가 작은 소녀는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손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주저앉았다. 소녀가 멍하니 앞을 바라보니 흔적 하나 없는 눈 사이로 조그만 구멍이 여기저기 움푹 패어져 있었다. “거짓말쟁이.” 키가 작은 소녀는 새파랗게 질려있는 작은 입을 힘겹게 벌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한없이 땅으로 추락하는 눈꽃의 행진 속에서 움츠려져 있던 작은 그림자는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아무런 미동도 없는 채로. 무의식적으로 눈을 떴다. 반쯤 풀려져있는 눈꺼풀이 나를 이불속으로 이끌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어지러운 머리를 다독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씩 앞을 향해 내딛을 때마다 살을 에어오는 한기가 전해져왔다. 옷깃을 부여잡고 종종 걸음을 하고 있는데 낡고 바래진 신발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던 눈동자는 어느 한 곳으로 향했다.

신발장 옆 가까운 곳에는 물기가 촉촉이 어려 있는 작은 운동화 한 켤레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신발은 한 켤레였다. 한동안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주시하고 있었다. 얼마간의 정적이 감돌았을까.

“이럴 줄 알았어. 이번에도 이럴 줄…” 낮게 내뱉은 한숨이 허공에 떠밀려가 한줌의 재가 되어버렸을 즈음 빨갛게 부어올라 있는 볼 위로 따뜻한 이슬방울들이 스쳐 지나갔다. 손으로 훔쳐내기를 여러 번 반복했지만 한번 시작된 눈물은 수도꼭지를 틀어 논 것처럼 쉽게 멈추질 않았다.

한 번도 지나친 욕심을 부려본 적은 없었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멀어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집착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랬던 내게 단란했던 가족의 깨어짐은 유리칼과도 같았다. 여린 어깨로 견뎌내기엔 너무 큰 상처인 것 같았다.

그리움 하얀 눈으로 다 덮어줄 만큼 아빠는 내게서 웃으며 등을 돌렸을 때 고사리 같은 손을 마주 잡으며 약속했었다. “널 혼자 두지 않을게. 꼭 돌아올게. 우리 딸은 눈을 좋아하니까 같이 눈 위를 걸어줄게 눈사람도 만들고…”하지만 그 약속은 내 키가 커갔을 즈음에도, 마음까지 커버렸을 즈음에도 지켜지지 못했다.

이번 년에도 하얀 눈은 질릴 정도로 많이 내렸다. 지난 시간동안 원망 아닌 원망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지독히도 쌓여가던 아빠에 대한 원망도 이제는 그리움이었다는 것을 안다. 아빠의 발자국도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꼭 그날처럼, 하지만  언젠가는 하얀 눈처럼 가슴 시리게 남겨진 그리움으로 당신의 발자국 눈 위가 아닌 가슴 속에 새겨놓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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