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밤의 꿈
한 여름 밤의 꿈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6.03.10 00:00
  • 호수 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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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문화원 청소년문예백일장 <산문 : 참방>
조선미/한산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에 있는 우리집에 일가친척들이 모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께선 나와 사촌동생들을 모두 불러 마당에 피어 있는 봉숭아꽃과 이파리를 따오라고 하셨다. 그리곤 밤에 봉숭아 꽃물을 들여 주신다고 하셨다. 나와 동생들은 신이 나서 "네" 하고 힘차게 대답하곤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마당엔 빨강, 분홍 알록달록한 봉숭아꽃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우리들은 바구니에 봉숭아꽃과 이파리를 따서 담았다. 할머니께서 봉숭아 꽃물을 들여 주신다는 말에 신이 나서 따다 보니 벌써 바구니 한가득 찼다. 저녁밥을 먹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꽃물 들이는 시간이 다가왔다, 할머니께선 봉숭아꽃과 이파리를 넣고 하얀 백색가루를 넣으셨다.

“할머니, 그거 지금 방금 넣은 거 뭐예요?”
“아, 이거 말이니? 이건 백반이라는 건데. 꽃물이 더욱더 빨갛게 들여지도록 도와주는 거란다.”
“어, 어 그럼 안 되는데…”
방학숙제가 ‘봉숭아 꽃물 들여 보기’인 남동생이 울상 지으며 말했다.

“봉숭아물 연하게 들여서 얼른 사진만 찍고 숙제 한가지 끝내려고 했는데…”
“빠알간 게 이쁘기만 하구만, 그냥 잠자코 기다리기나 해봐라. 이쁘게 들여 질 테니까.”
엄마께서 조용히 심통 난 동생을 타이르셨다. 나도 엄마 말씀 따라 조용히 할머니께서 하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거 봉숭아 꽃물들이면 온갖 귀신들이 물러난단다.”
“왜요? 왜 그래요, 할머니?”
나와 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합창을 하듯 할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귀신은 붉은 색을 아주 싫어해요. 그래서 봉숭아 꽃물을 들이면 귀신이 붙었다가도 얼른 도망가곤 하지. 아, 그리고 봉숭아 꽃물이 첫눈 올 때까지 남아있으면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진대요.”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들은 동생은 그제서 화를 풀고, 할머니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머님이 얼른 봉숭아물 들여 주세요. 네? 얼른요. 얼른요오. 빨갛게 잘 들여 주세요. 제 소원 꼭 이루어 질 수 있게…”

“그래, 그래. 알겠다. 알겠어. 우리 성훈이 부탁이니, 이 할미가 꼭 들어 줘야지.” 하며 할머니께서 웃으셨다. 먼저 동생이 꽃물을 들이고 그 다음에 내가 들이기로 했다. 나는 할머니 말씀을 반은 믿고, 반은 안 믿는 심산으로 손톱 두개에만 꽃물을 들였다. 그 후, 몇 달이 지나가고, 그동안 나는 그 한여름밤의 멋진 꿈들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지내고 있었다.

12월4일. 김장을 모두 끝낸 다음날이었다.
하늘에선 하얀 눈들이 펑펑 내렸다. 뉴스에선 첫눈치곤 정말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고 했다. 다음날, 학교에서 친구들과 한바탕 눈싸움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왔을 때 친구들이 첫눈 오는 날까지 봉숭아 꽃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얘기를 하였다.

나는 그제서야 손톱을 바라보았다. 아직 남았다. 아직 꽃물이 남아있었다. 나는 신이 나서 “와아”하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여름밤 할머니께서 해주신 이야기와 달랐다. 할머니께선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뭐 어떤가. 무엇이 이루어지든 다 이루어지면 좋은 거지.

내 손톱 끝엔 아직도 첫사랑과 소원이 이루어지는 꿈을 가진 봉숭아 꽃물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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