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할아버지와 요구르트 할머니
택배 할아버지와 요구르트 할머니
  • 차은정 기자
  • 승인 2006.03.24 00:00
  • 호수 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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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또 사랑’한지 38년 소박한 노후생활
일 속에서 보람 찾은 이홍구·신춘자 부부
   
▲ <사진/공금란 기자>
배달 홍수 시대다. 클릭 한번, 전화 한 통화에 원하는 물품을 안방에서 받아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을 배달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빨리’ 배달하느냐가 문제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해외에서 국내로 물품이 쉴 새 없이 오고 간다. ‘택배 아저씨’를 보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젊고 힘 꽤나 쓸 것 같은 ‘아저씨’가 아니라 넉넉한 미소에 말 한마디 건네고픈 ‘할아버지’다. 서천군 ‘최고령 택배 할아버지’ 이홍구(65세) 씨는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늘 넉넉한 미소로 고객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택배 할아버지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두 가지 다짐을 한다. 참지 못할 상황이 아니고는 고객과 절대 다투지 않을 것, 전화를 걸 때는 좀 더 밝고 쾌활하게 할 것 이다. 직업의식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이 씨는 모든 일은 굳이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웃으며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쇼핑 중독증인 배우자나 자녀를 둔 부모가 택배를 받을 때면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 때는 무조건 ‘미소 작전’을 쓴다. 아내 ‘요구르트 할머니’ 신춘자(63세) 씨와 여태껏 싸운 적이 없는 것도 바로 이런 이 씨의 인생관 때문이다.

두 부부는 지난 10일 결혼 38주년을 맞았다. 교회 목회자들의 중매로 만나 서천에서 자리를 잡았다. 택배 할아버지는 “나 만난 덕에 도시 아가씨가 촌사람 됐지” 한다. 그 때만 해도 요구르트 할머니는 서울서 곱게 자란 ‘도시 아가씨’였단다. 이제 40여 년이 흘렀어도 할아버지에겐 아직도 아내가 참한 도시 아가씨인지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한다.

택배 할아버지는 아내를 ‘똘이엄마’라고 소개한다. 정신도 몸도 건강하고 ‘똑’소리 나게 일도 잘 한다는 얘기다. 요구르트 할머니는 새벽 4시에 나가 요구르트를 배달하고 오후엔 시장에서 생선을 팔고 있다. 그래도 앓아눕거나 고단하다고 몸을 쉬지 않는다.

할머니는 시집 온 뒤 남편과 함께 여러 일을 해봤다. 특히 오토바이로, 차로 물건이든 사람이든 배달(?)한 경험이 많다. 화장품, 빵, 아이스크림, 생수 대리점…, 안 해 본 일이 없다. 부부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열두 가지 재주 있는 사람 치고 돈 버는 사람 없다더니 우리가 그렇다”고 말한다. 참 부지런하게 살았지만 풍족하지 않은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다.

부부는 몸이 허락하는 한 택배와 요구르트 배달을 계속 할 생각이다. 아직은 둘 다 건강하다고 자부한다. 지리산 천왕봉, 계룡산, 금강산 만물상까지 젊은이들도 씩씩대는 등산을 다니며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구르트 할머니’는 “40대보다 걸음이 더 빨라”하고, ‘택배 할아버지’는 “당뇨가 있은 지 20년 정도 됐는데 반신욕, 족탕도 하고 만보기를 차고 다녀 건강이 좋아졌다”고 한다. ‘택배 할아버지’는 배달을 하다 보면 자식들이 부모들에게 옷이며 보약이며 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부모들에겐 그런 것보다 “필요할 때 함께 있어주는 게 제일”이라고 말한다.

부부는 2남2녀를 반듯이 키워 시집장가를 보냈고 막내아들하고만 살고 있다. 이제 막내아들도 결혼을 하면 내보낼 생각이다. 자식들은 그들대로 살고 부부는 부부대로 편안한 노후를 보낼 계획이다.

‘택배 할아버지’와 ‘요구르트 할머니’는 오늘도 함께 있어 좋고, 일이 있어 좋다. 오래도록 이들 부부의 나이를 거꾸로 먹는 ‘웃음살이’를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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