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하고 있으니 좋지”
“애들하고 있으니 좋지”
  • 차은정 기자
  • 승인 2006.03.24 00:00
  • 호수 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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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지켜온 지 35년 최월순 할머니
비남초 아이들 학교 밖 보호자 되기도

   
초등학교 앞엔 꼭 있다. 아이들을 유혹하는 갖가지 먹을거리와 온갖 문구를 판매하는 가게가 꼭 있다. 여전히 떡볶이, 튀김 등은 하교길 아이들을 유혹하고, 준비물 못 챙겨간 아이들은 쉬는 시간 급하게 달려 나와 준비물을 사간다. 

비남초등학교 앞을 수십년 째 지키고 있는 최월순(72세) 할머니의 가게에도 쉬는 시간을 이용해 아이들 4명이 우루루 왔다갔다. “할머니 리코더 사러 왔어요” 하고. “월요일날 들어오니까 그때 사러 와. 오늘은 없어”하니 다시 후다닥 학교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햇살 좋은 날 가게 밖에서 파를 다듬던 할머니 손길이 꼬마 손님들을 맞아 잠시 짬을 찾았다. 막내아들네 보낼 김치를 담그려고 다듬던 파였다. 학생들이 많았던 때는 이런 여유도 없었다 한다. “600명도 넘었어”  그때는 장사 손길이 바빴다.

물건 사고파는 것도 그랬지만 풍족하지 않던 시절 몰래 먹던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그런 아이들은 없지만 아이들이 북적대던 그 때는 이미 과거가 돼 오히려 그런 아이들마저 그립다.

할아버지(김중건, 76세)는 비남초에서 정년퇴임을 했다. 그 때는 공무원 월급이 박했고 남편이 교사로 재직 중이니 다른 일을 해서 돈 벌기도 힘들고 학교 앞에 가게를 내게 됐다고 한다. 당시 가격으로 ‘쌀 60개’를 주고 산 집이다.

“나 같은 사람 때문에 회사가 부도 나” 할 정도로 할머니는 아끼고 아끼며 살아왔다. 김치를 담그려던 그 파도 파시세가 약해 안 팔고 뽑아둔 것을 가져온 것이다. 가끔씩 옷도 만들어 입는다. 재봉 경험 덕에 고쟁이바지, 앞치마, 버선 등 필요할 때마다 자유롭게 제작이 가능하다. 사실 멀리 나갈 일도 드물어 편하게 입는 이유도 있다.

최근 비남초는 어린이보호구역 지정 문제로 주목을 받았다. 정문 바로 앞에 도로가 있고 차들이 워낙에 쌩쌩 달리는 터라 학부모와 교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도로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면 할머니 맘이 편치 않다.

그래서 할머니는 항시 아이들을 볼 때마다 횡단보도 앞에 세워두고 “건너지 마라, 건너라”하고 감독도 한다. “운전기사들이 아무리 얘기를 해도 말을 안 들어” 나름대로 학교 밖 보호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일 뿐이다.

아이들 수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할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좋다고 한다. “방학 때 내내 바느질만 했어, 심심해서” ‘할머니, 할머니’ 하며 재잘대던 아이들은 항상 할머니가 그 자리에 서 있게 하는 오랜 힘인지도 모른다. 오늘 리코더를 못 산 아이들은 월요일에 또 올 테다.
“할머니, 리코더 주세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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