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책 읽어?"
"그냥, 심심해서……."
"심심해서? 우와, 엄마가 바라던 바야.
심심할 때 책 읽는 거.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가 책 제목이야?"
"응."
"어째 좀
그렇다. 제목이 뭐 그러냐?"
"왜? 난 제목 때문에 도서관에서 빌린 건데? 뭔가 일이 일어날 것
같잖아."
"무슨 얘긴데?"
"응? 음…그러니까 어떤 애가 죽어서 다시 귀신이 되가지고 아이들 앞에 나타난다는 뭐 그런 얘기야."
난 사실 제목 밖에
읽은 게 없어 맘대로 이야기를 꾸며댔다.
"뭐야? 시시하다. 너무 엽기적인 거 아냐?"
"그런 거 아냐. 사서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좋은 책이라고 뽑힌 거래. 좀 어려울지도
모른다면서 빌려주셨어. 중학생이 주인공이라나."
"그래? 천천히 읽어. 너 요즘 책을 만화 보듯이 그렇게 보더라. 어찌나 속도가 빠른지 엄만 네가 책을 읽는지 그냥 글씨 구경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어."
"보는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구. 다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엄만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는 게 좋을 것 같아."
"에이, 읽기도 힘든데 생각까지. 난 정말 독후감 쓰고 느낀점 말하고 그런
게 제일 싫어. 그냥 읽으면 되지 꼭 뭘 해야 하나?
재밌다, 재미없다. 왜 그렇게만 이야기하면
안되냐고? 자꾸 뭘 느꼈냐고 물으니까 사실 더 읽기 싫어지는 것 같아."
"그래? 그럼 엄마가 이제 안 물어볼게. 우리 아들이 그렇게 느낀점
스트레스를 받는지 몰랐네."
"그런데, 엄마 나한테 뭐 할말 있는 거야?"
"응? 응, 아니 뭐 그냥."
"무슨 말이
그래? 엄만 내가 그렇게 말했다면 똑바로 말 안한다고 혼낼거면서."
"엄마가 그랬니?"
"몰랐어?"
"그랬다면 미안. 때때로 말하기 힘든 걸 말해야 할 때 그렇게 말하기도 하는데."
"엄만, 나한테 뭐가 말하기 힘든데?"
"호수야, 사실은 아까 형오 엄마가 다녀갔어."
"그건 나도
알아. 인사도 했잖아."
"아, 그렇지. 그런데 너희들 혹시 요즘 사이 안 좋니?"
엄만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 눈빛에 걱정과 호기심이 한데 얽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왜? 아줌마가 그래? 우리 사이 나쁘다고?"
"그런 게
아니고, 요즘 형오가 사춘기를 앓고 있나봐. 아줌마를
힘들게 한 대. 걸핏하면 방문을 잠그고, 샤워하라고 해도
나중에 한다면서 꽥 소리를 지르고, 별 일 아닌데도 막 대들면서 화를 내고 그런단다."
"그거 다른 아이들도
그러는 거 아냐? 나도 엄마한테 그럴 때 있잖아."
"그렇지. 그런데 형오는 거의 매일 그런대. 그래서 집안 분위기가 형오
때문에 많이 어둡다나봐. 게다가 요즘은 여자 친구한테 빠져서 오로지 그 애 생각만 한 대. 일기에도 그 애 이야기뿐이고……. 그 애가 다니는 영어 학원에
하도 보내 달라고 떼를 써서 거기에도 다니고 있대. 요즘은 핸드폰까지 사달라고 한단다."
(계속)